[뉴스룸에서-남도영] 남북정상회담의 딜레마

입력 2011-03-09 19:15


얼마 전 일본의 한 신문은 남한과 북한 관계자들이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과 관련한 비밀 접촉을 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이를 공식 부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에게 “비밀 접촉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남북한 정보기관 관계자들끼리 막후 접촉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그 수준도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한 비밀 접촉설이 자주 언론에 나오는데 진실이 뭔가”라는 질문에 “어떤 사람들이 베이징 뒷골목에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게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의미 있는 움직임은 없다는 설명이다.

이 정권 들어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접촉은 있었다. 청와대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노동부 장관 시절인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정상회담 의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 실장이 입장을 밝힌 적은 없지만, ‘임태희·김양건 회동’은 정설이다. 2009년 국가정보원 라인도 가동돼 북측과 수차례 접촉하며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성사 직전까지 갔던 남북정상회담 추진 움직임은 지난해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가라앉았다. 남북은 다시 냉전 상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올해 들어 분위기가 약간 달라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연이어 “우리는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3·1절 기념사), “금년을 놓치지 않고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한국은 그러한 자세가 되어 있다”(2·20 산행 간담회)라고 말했다. 대결에서 대화로 무게추가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인이다. 남북한 비밀 접촉과 정상회담을 거론하는 언론 보도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 청와대는 여전히 부인하는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5년 단임 대통령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1차 남북정상회담을 이뤄낸 이후, 현직 대통령들은 정상회담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중반까지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남북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2004년 3월)이라거나 “남북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2005년 7월)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10월 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 임기 4년차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봄에는 서울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 50여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2차 핵안보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핵정상회의 이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전격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에 진전을 이뤄내고, 이를 핵정상회의에서 공식 발표하는 ‘그림’에 대한 유혹이다. 이 그림이 완성되면 이 대통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2009년 원전 수주,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성공 개최, 2011년 4대강 사업 완성, 2012년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치적을 쌓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가 완성되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사과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쇄국과 군사적 모험주의 대신 개혁과 개방을 선택해야 한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이른 시일 내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한다. 이 대통령이 선뜻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들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의구심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정상회담과 관련한 더 많은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어쩌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하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다.

남도영 정치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