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스캔들’ 파문] ‘치파오 자락’에 넋나간 엘리트들 한순간에 추락
입력 2011-03-09 22:12
중국 여성 덩신밍(33)씨에게 농락당한 상하이 영사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고시를 패스한 잘나가던 엘리트들이다. 총영사관 직급상 고위직에 속하는 영사가, 그것도 여러 명이 중국 여성 한 명에게 놀아난 이번 사건이 한국 외교공무원의 구멍 뚫린 정신자세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다.
‘상하이 스캔들’에 연루된 영사들은 모두 행정고시, 외무고시, 사법시험 출신이다. 법무부 감찰에서 덩씨와의 불륜관계를 시인한 H 전 영사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5급 검찰사무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H 전 영사는 검사가 주류인 법무부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됐고 강금실 전 법무장관 비서도 지냈다. 행시 출신이 오를 수 있는 법무부 최고 직위까지 승승장구할 것으로 기대됐던 사람이다.
덩씨의 협박으로 ‘내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는 각서를 써준 지식경제부 소속 K 전 영사 역시 명문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패스했다. 30대 초반에 산업자원부(현 지경부) 무역투자실 소속으로 주중 대사관에 근무했다. 이어 산업정책과를 거쳐 2007년에는 부처 엘리트만 간다는 인사팀장을 지냈다. 상하이 영사 재직 시절 현지에 진출한 한인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중국인 직원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지원 사업을 실행하면서 일 잘하는 무역외교관으로 주목받았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덩씨와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을 받고 있는 외교부 소속 P 전 영사도 외무고시 출신이다. 현재 직급은 1등 서기관으로 외교부 본부에 근무하고 있다. P 전 영사는 1988년 외교부에 들어와 주로 영사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영사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2006년 8월 재외 핵심 공관으로 분류되는 상하이 총영사관에 부임했다. 외교부 공무원들은 “점잖은 인물로 평판이 좋았다”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덩씨와 찍은 사진이 공개된 K 전 영사는 ‘경찰청장감’이란 기대를 받던 인재였다. 경찰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경찰대 출신 중 최연소 총경 기록도 남겼다. K 전 영사는 2009년 7월 중국 공안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일당을 검거한 뒤 피해액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경찰청과 상의 없이 국제변호사를 선정하는 등 독단적 조치를 취한 것이 문제가 돼 지난해 1월 감찰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K 전 영사는 감찰 조사가 본격화되자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제복은 벗었지만 사시 출신이어서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덩씨에게 유출된 유력 정치인 연락처 소유주인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는 1990년대 대학가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영어 교재 ‘거로 Vocabulary Workshop’의 저자다.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으며 뉴욕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