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만에 만난 母子, 섬뜩한 비극적 결말…“너 내 아들 맞느냐”에 격분 생모 살해
입력 2011-03-10 10:45
8일 오후 11시10분쯤 서울 관악경찰서 신사파출소에 이모(34)씨가 찾아왔다. 이씨는 “어머니를 살해했다”며 “복수를 마쳤으니 이제 죄 값을 치르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어머니 최모(55)씨가 자신이 6살 때인 1982년 의붓아버지 노모(52)씨와 결혼하기 위해 집을 나갔다고 했다. 이때부터 그의 마음에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응어리졌다.
어머니가 가출한 뒤 그의 삶은 엉망이 됐다. 이씨의 친아버지는 부인이 집을 나가자 다른 여자를 불러들였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는 이씨가 11살 때인 87년 자살했다. 새어머니는 이씨와 남동생을 부산의 한 소년의 집에 보내고 연락을 끊었다. 이씨는 새어머니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16살 때 소년의 집에서 도망 나왔다. 이후 가발공장 등을 전전했다. 그러다 98년 소년의 집에서 나온 동생을 만나 서울 신림동 전세 50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지냈다. 이씨는 최근 몇 년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동생이 공장 일을 하며 번 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이씨는 자신의 불행이 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삶이 힘들어질수록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더욱 깊어갔다. 결국 이씨는 둘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씨는 8일 오전 11시40분쯤 어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 서울 방화동의 영세민 임대아파트에 찾아갔다. 이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지만 어머니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씨가 이름을 밝힌 뒤에야 “술 한 잔 하자”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둘은 소주를 마시며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머니를 살해하고 싶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최씨는 “기다리던 사람이 찾아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술자리가 길어지자 말다툼이 빚어졌다. 이씨는 “왜 자신을 버렸냐”고 어머니를 다그쳤다. 어머니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씨가 “너 내 아들 맞느냐, 누가 보내서 왔느냐,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말하며 이씨를 밀쳤다. 이씨는 갑자기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이 되살아나 흉기로 살해했다. 이씨의 분노는 의붓아버지에게로 향했다. 그는 오후 6시30분쯤 경기도 양주시의 한 식당 앞에서 만난 노씨도 살해했다.
경찰조사에서 이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어렸을 적 어머니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한 뒤 충격을 받아 이성교제도 해본 적이 없다”며 “살해한 건 죄송하지만 나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9일 이씨에 대해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