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22년·절필 10년 설레고 두려운 첫 시집… ‘애초의 당신’ 펴낸 시인 김요일

입력 2011-03-09 17:29


그는 시인이기에 앞서 가인(歌人)이다. 무던히도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자신이 어떤 목청을 갖고 태어났는지 알기 위해 참 오래 기다렸다. 1990년 문예지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22년 만에 사실상 첫 시집인 ‘애초의 당신’(민음사·사진)을 낸 김요일(47) 시인 이야기다.

이름 때문에 지인들 사이에서 ‘금요일’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시인들 가운데 노래 잘하는 ‘톱10’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음주가무에 능하지만 춤보다 노래가 더 곡진하다. 스무 살 때 친구인 작곡가 송시현을 통해 가수 이선희에게 ‘겨울 애상’을 헌시한 그는 서울교대 음악교육과 출신이다. 음악은 그만큼 그의 후형질적인 피다.

‘1990년대를 여는 시인’으로 촉망받던 그는 94년 실험 장시 ‘붉은 기호등’을 불쑥 출간한 뒤 문단의 엇갈린 평가를 받고 시적 불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재봉 성귀수 주종환 등과 함께 홍대 앞 클럽 ‘발전소’에서 국내 최초의 집단 시 퍼포먼스를 갖는 등 실험 대상으로서의 시에 대한 모색을 해보았지만 언어적 한계에 직면하면서 근 10년을 절필한다.

“오래전에 나는 아바나 해변의 재즈 피아니스트였네/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같은/유명한 악단은 아니었지만/가끔, 취한 ‘체 게바라’가 찾아와 클럽의 연주를 듣고 가기도 했었지/바다가 보이는 작고 낡은 바에선 언제나 음악이 끊이질 않았다네”(‘아바나의 피아니스트’ 부분)

2003년 이 시를 발표하면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목청을 가다듬는다. 수년 전 위암 수술로 위장 전부를 떼어낸 그는 얼마 전 급성 담석증으로 경기도 일산의 한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8일 병원으로 찾아가 만난 그는 쓸개즙을 호스로 받아내는 중환자임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시는 낯선 사고, 정말 다른 것을 보여줌으로서 동시대의 새로운 정서를 환기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철저하게 노래여야 하지요. 가수는 목청만 찾으면 계속 노래할 수 있지만 시인은 언제나 새로운 목청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여년 만에 첫 시집을 손에 쥔 그는 “조금 설레고 많이 부끄럽고 두렵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노래가 되지 않으면 시를 쓰지 않을 정도로 시 속의 리듬을 맞추려고 했다”는 그는 중독성 높은 시편으로 세상을 취하게 만든다.

“우리 사랑은 소멸에 대한 설명/일생을 기대 앉아 서로를 지워 가며 살기로 했죠/아아, 사랑은, 사랑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위대한 혁명임을(중략)//‘마틸다, 술 한 잔 주오/세상은 천박하고/기타줄은 잘도 끊어지네/마틸다, 한 잔만 한 잔만 주오’”(‘마틸다’ 부분)

뉴욕 할렘가 출신의 흑인가수 해리 벨라폰테의 ‘마틸다’를 연상시키는 그의 시는 실패한 혁명가의 서재에서 흘러나오는 애잔하고 서러운 음향을 닮아있다. “내 시속에 체 게바라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마틸다가 등장하는 것은 그것들이 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죠.”

시집에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집시의 시선이 담겨 있다. 이방인이 되기 위해 혹은 스스로 떠돌기 위해 실패를 기획하고 자초하는 역설이 그의 영혼 속에서 이처럼 구원으로 뿌리 내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역설인 것이다. 쾌유를 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