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기의 溫 시네마-블랙 스완(BLACK SWAN)] 완벽을 향한 선과 악의 이중주

입력 2011-03-09 18:04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배들은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리지만 때로는 원망하고, 남을 시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은 그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내털리 포트먼의 완벽한 연기, 러시아의 거장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 음악과 퍼포먼스,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영혼 안에 머무르는 선과 악의 이중주를 영화 ‘블랙 스완’으로 표현해 냈다.

전직 발레리나 출신 엄마와 단둘이 뉴욕에 사는 니나(포트먼 분)는 그녀가 속해 있는 뉴욕발레단에서 새로 선보이는 블랙 스완의 주인공역을 갈망한다. 이번에 그녀가 표현해야 하는 백조는 차이코프스키의 초연 그리고 지그프리트 왕자와 결혼을 약속하고 마법에서 풀려나기를 기다리는 혹은 현재의 볼쇼이 발레단의 백조와는 사뭇 다르다. 왕자와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역인 요염하고 마성적인 흑조를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1인2역이다.

그러나 니나의 감수성은 아름답고 고결한 슬픈 백조의 그것에 머물러 있다. 니나는 그토록 바라던 블랙 스완을 얻기 위해 그녀의 가슴속에 감춰진 농염하고 어두운 본성을 자극해야만 한다. 애로노프스키 감독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니나의 심리적인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연출 방식을 택한다. 거울에 나타나는 그녀의 또 다른 자아, 뉴욕의 어두운 뒷골목과 지하철 그리고 좁고 폐쇄적인 엄마의 집을 통해서 니나가 점점 마성으로 물들어 가는 과정을 시각적, 공간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관객의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스릴러 장르의 전형인 높은 데시벨의 청각적 효과음을 차용한다. 발레리나로서 엄마에게 길들여진 니나, 블랙 스완 역을 따내기 위해서 경쟁해야만 하는 동료의 시기, 질투와 배신 그리고 내재된 어두움을 끄집어내야 하는 자아. 이러한 요소는 우울하지만 아름답고 장엄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선율처럼 다가든다.

영화 제목 블랙 스완은 예수님이 즐겨 쓰신 스토리텔링의 한 방법인 흥미 있는 소재로 청중을 집중시키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복음을 전달하는 구조와 맥을 같이한다. 이 영화의 제목을 ‘백조의 호수’로 했다면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로만 인식할 뿐이다. 그러나 블랙 스완으로 관객을 불러 모으고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선과 악의 갈등을 보여 줌으로써 관객 스스로가 사유하게 만든다.

블랙 스완의 내러티브는 포트먼이 니나를 표현하기 위한 여정과도 맞닿아 있다. 열두 살에 ‘레옹’의 마틸다 역으로 배우로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스타워즈’ ‘브이 포 벤데타’를 거치면서 자칫 예쁜 여배우로서만 기억될 뻔한 포트먼은 니나 역을 목적지로 삼아 연기 인생의 항해를 해 온 듯하다.

포트먼은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이러한 고뇌와 번민을 궁극적인 자기완성과 예술혼을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진 발레리나 니나 역으로 완벽하게 혼연일체시켰다. 그리고 2011년 오스카는 오드리 헵번의 순수함과 조디 포스터의 카리스마를 동시에 표현한 그녀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다.

조조할인 영화를 즐기는 나는 하루 종일 우울함에 젖는 것이 싫어서 가급적 무거운 영화는 피하는 편이다. 그러나 블랙 스완의 마지막 장면, 영화의 완성이자 발레가 완성되는 백조가 몸을 던지는 순간은 이 영화의 무거운 스토리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안겨준다. 창작 예술의 궁극을 엿본 것처럼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다.

(서울기독교영화제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