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향 폴∼ 폴∼ ‘까레이스키 빵’… 고소한 나눔 ‘빵 만드는 사람들’

입력 2011-03-09 18:12


서울고려인교회. 러시아를 비롯한 옛 독립국가연합 지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을 일컫는 까레이스키를 위한 조그만 공간이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쌍림동에 위치한 교회 문을 열었다. 좁은 공간, 열악한 환경의 예배당이지만 고려인들은 편안해 보였다. 성경 한 구절은 물론이고 목사님 말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교회 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빵 냄새였다. 예배가 끝나자 교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빵을 꺼내 들었다. 그들은 빵을 한 입 베어 물며 한 주 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태어난 곳을 떠나 고국 땅에서 어렵게 일을 하는 이들에게 빵은 모두를 하나로 묶는 끈과 같다. “예전에 먹던 그 맛이라 고향 생각도 나고, 먹을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빵을 만드는 사람들

전날 오전 인천 석남동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자 1층짜리 집이 보였다. ‘빵 만드는 사람들’이라 쓰인 조그만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 집 마당, 33㎡(10평) 남짓한 분홍색 건물의 문을 두드렸다. 파란색 앞치마를 두른 6명의 중년이 밝은 웃음으로 맞았다.

“어서오세요. 빵부터 좀 드세요. 맛있어요.” 손으로 뜯어 얼떨결에 입에 넣었다. ‘특별히 맛도 없고 달지도 않고. 빵이 왜이래.’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처음엔 잘 모르지만 먹다보면 맛있다고 느낄 거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말 그랬다. 한 번, 두 번. 빵이 혀에 닿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달랐다. 단맛이 빠졌지만 빵은 자기만의 특별한 맛이 있었다. 고려인교회 고광신(52) 목사가 말했다. “고 목사 표 빵 맛이 어떻습니까.”

그에게 빵은 특별했다. 선교 대상인 까레이스키에 대한 사랑이 담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 입맛엔 처음에 안 맞을 수 있지만 그들은 너무 좋아해서 기뻐요.”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독거노인, 이주노동자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도를 거듭하던 고 목사의 머리에 꽂힌 것은 다름 아닌 빵이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조각,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베풀었잖아요. 마태복음 말씀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아 이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앙아시아 황무지에서 개척 생활을 하면서 까레이스키는 쉽게 부패하지 않고 휴대하기 편한 빵을 주식으로 삼았다. 고 목사가 빵을 택한 또 다른 이유였다.

그는 봉사단체 ‘빵 만드는 사람들(빵만사)’을 만들었다. 2007년 4월 24일부터 빵 선교는 시작됐다. 손수 만든 빵을 어려운 이웃과 외국인 근로자의 손에 쥐어 줬다. 매주 토요일 빵을 만들어 주말 동안 고려인과 이주노동자, 인근 노인들에게 나눠준다.

빵 선교를 위해 제과·제빵 기술까지 익힌 고 목사는 처음 빵을 만들어 교인에게 전한 날을 잊지 않았다. 6개월간 열심히 배운 만큼 맛에는 자신 있었다. 가장 맛있는 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고 싶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그러나 그 맛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너무 달고 느끼하다’는 것이었다. 받아든 빵을 먹은 뒤 쓰레기통에 버리는 교인도 여럿이었다. ‘단 것’보다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고려인의 습성을 간과한 채 만든 빵,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맛있는 ‘고 목사 표 빵’

고 목사는 고려인이 좋아하는 빵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제빵왕 고탁구’가 된 것처럼 오븐 앞에서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재료의 비율을 달리해 보고, 굽는 시간도 조절해 봤다.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고 목사만의 ‘까레이스키를 위한 제빵 비법’이 탄생했다.

준비물은 밀가루, 설탕(조금), 물, 소금, 이스트, 계란, 우유, 쇼트닝, 물엿과 분유가루. 믹서에 20분 동안 돌려 반죽을 만든다. 농구공 크기로 동그랗게 만들어 1차 발효를 시킨다. 발효에 필요한 시간은 50분. 발효된 반죽을 조그맣게 손으로 떼어 내 빵 모양을 만든 뒤 40분 동안 2차 발효한다. 이후 계란 노른자와 물, 약간의 설탕을 졸인 물로 만든 소스를 빵에 입힌다. 대형 오븐에 넣어 180∼200도 온도에서 30분을 익히면 드디어 ‘고 목사 표 빵’이 완성된다.

“달고 느끼하고 빨리 질린다”던 고려인들의 평가는 달라졌다. 딱딱한데다 단 맛은 없지만, 담백하고 건강에도 좋은 그 빵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맛있다.’ 그 말 한마디 듣기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밥 먹을 때 아내에게 ‘맛있다’고 말하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되더군요.”

이후 그는 고려인들이 빵을 먹으면서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곤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 세기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 벌판으로, 다시 연해주로 떠돌아다니면서 빈곤과 유랑을 거듭한 우리 핏줄. 30명 남짓,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빵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국 땅에서 하나가 되는 그들을 바라보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꿈꾼다

고 목사와 빵을 함께 만드는 사람 중엔 미얀마 출신 윌리엄(36)씨도 있었다. 그는 빵을 만들 때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다고 했다. “처음엔 농구공 크기의 반죽에 불과합니다. 거기서 무려 130개의 빵이 만들어집니다. 조그만 반죽이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빵이 되는 것, 어떻게 보면 작은 기적이 아닐까요. 그런 기적이 모여 더 많은 고려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겁니다.”

기적의 공간은 협소하고 초라했다. 오븐, 발효기 등 오래된 기계와 주방 집기가 벽면을 둘렀다. 봉사자 6명에 기자 두 명까지 들어서자 사진촬영조차 불편했다. 난방이 잘 안돼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하지만 향기로운 빵 냄새와 웃음소리는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처음 반죽을 할 때부터 완성된 빵이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4시간. 빵을 만드는 6인의 얼굴은 내내 해맑았다. 정성껏 만든 빵을 고려인과 인근 노인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고 했다.

“빵이 완성돼 쌓여가는 걸 보면 마음이 풍족해져요. 어려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것,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더군요,” 고 목사와 함께 빵 사역을 하는 김옥균(49) 목사가 말했다.

이들에겐 두 가지 기도제목이 있다. 일단 장소의 문제. “빵 공장이 비좁아 원활히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더 많은 빵으로 사랑을 전하고 싶어요. 겨울엔 춥고, 여름엔 푹푹 쪄 어려운 점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좀 더 좋은 장소를 허락해주실 겁니다.”

이들은 한국에 와 있는, 또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여전히 고생하고 있는 우리 민족 고려인이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했다. 고향의 맛, 고 목사 표 빵을 먹으며 활짝 웃는 고려인의 모습에서 희망을 봤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