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김소원 아나운서… ‘눈물의 여왕’ 눈물샘 걱정

입력 2011-03-09 17:58


그녀는 울먹였다. 지난해 4월 16일의 일이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희생된 장병의 소식을 전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제대하면 맛있는 것 만들어주겠다던 아들은 차가운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가까스로 앵커 멘트를 마친 그의 눈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

SBS 김소원(38) 아나운서. 냉철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9년 동안 뉴스를 전해 왔던 그녀가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말이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아름다운 여정을 함께하는 프로그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TV 매주 월요일 오후 6시30분)을 진행하고 있는 김 아나운서를 7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났다.

눈물의 여왕

“제가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에요.”

진행을 맡은 지 한 달 남짓. 그는 먼저 눈물 얘기를 꺼냈다. 눈물을 참는 게 가장 큰 과제가 될 것 같다는 거다.

벌써 한 번 사고(?)를 냈다. 근이영양증(유전적 요인으로 근력이 저하되고 근육섬유를 괴사시키는 퇴행성 질병)을 앓고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고 눈물샘이 터졌다.

“아이 어머니가 울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는데 가슴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더군요. 결국 내레이션 녹음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눈물을 참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원래 내레이터는 영상 한 장면, 한 장면을 일일이 보면서 화면에 목소리를 입힌다. 하지만 슬픔이 밀려와 녹음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지혜를 찾아야 했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는 장면이 나올 때 화면에서 잠시 눈을 떼고 대본만 주시하며 위기를 극복한다. “그러면 안 되는데…”라면서도 어쩔 수가 없단다.

그래도 그의 내레이션에선 건조함이 느껴진다. 눈물의 여왕에게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내레이션에 대한 소신이 있었다. 내레이터가 영상에 앞서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 시청자의 감정에 앞서 나가기보다 내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여기서는 웃으시고, 여기서는 울어요’ 식의 감정적 내레이션은 폭력이라고 봐요.”

이는 이 프로그램 이상하 PD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그는 감정이 넘치지 않으면서 뉴스처럼 딱딱하지도 않은, 중간 지점을 찾아가고 있다. 눈물의 여왕의 가장 큰 과제가 눈물을 참는 것이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2003년 5월 10일 처음 전파를 탄 이 프로그램은 장애, 희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 가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정을 선정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솔루션 다큐멘터리다. “그동안 이 같은 프로그램이 어려운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면 우리는 해결책과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석한 이 PD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건 안타까움 때문이었다고 했다. “보통 일회성 방송에 그쳤었죠. 실질적인 도움을 꾸준히 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식의 방송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 도움을 주기 위해 의료진과 사회복지전문가, 경제전문가, NGO 및 정부 관계자로 구성된 솔루션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위원회는 치료와 가정의 복원을 위해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필요한 지원을 한다. ARS로 모은 성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기금운영위원회가 구성된 것도 특징이다.

김 아나운서는 몸이 아픈 아이들에게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매회 방송할 때마다 사회복지 안전망이 챙겨주지 못하는 부분을 우리와 시청자가 힘을 모아 메운다는 걸 느낍니다. 미디어의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죠. 고마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뒤늦게 참여하게 돼 기쁘기도 하면서 무임승차한 것 같아 제작진께 죄스럽기도 하네요.”

가난하고 아파하는 우리 아이들이 TV 프로그램으로 구제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원래 그것은 사회안전망이 감싸야 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장애인, 아픈 아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읽었다.

“함께 가고 싶어요.”

얼마 전 그는 경기도 구리에 사는 시은이를 찾았다. 갓 돌을 지난 여자 아기는 염색체질환을 앓고 있었다. 촬영하는 동안 그는 아기를 꼭 안아 줬다. 말을 나누지 못해도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느낌, 참 따뜻했다.

“아릿했다고 할까요. 아이 엄마는 심각한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고 부부사이에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와 대화를 나눌 때 아이와 엄마, 참 밝아보였어요. 이들을 만나면서 앞으로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제 역할이 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죠.”

그들의 친구가 돼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발을 맞춰 나가는 것. 시은이가 준 귀중한 선물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병을 완전히 낫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친구가 되려고 해요. 찾아가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TV에 나오는 아나운서랑 아는 사이라고 다른 아이에게 자랑도 하고요.”

그는 갑자기 떠오른 게 있는 듯 이 PD에게 건의사항을 건넸다. “방송 중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 모습을 본 많은 시청자께서 기부할 수 있겠죠. 더 중요한 건 몸이 불편한 아이, 좀 아플 뿐인 아이도 또래와 마찬가지로 밝게 노는 모습이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화면보고 내레이션 좀 하게요(웃음).”

그는 SBS ‘8뉴스’의 안방마님 자리를 이달 말 후배에게 넘겨준다. “‘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맡게 됐을까’ 생각해봤어요. 저의 인간적인 모습을 봐주셨을 수도 있고요. 잘난 척하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 옆에서 같이 길가는 친구처럼 편한 방송을 하려고 해요.”

오후 5시, 회의가 있다며 자리를 뜨는 그가 말했다. “노변정담하듯 이야기 나누니 너무 좋네요. 진행자로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 참 기뻤습니다.”

어린 친구들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그는 이미 준비를 마친 듯했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윤여홍 선임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