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마다 고단한 주민들의 꿈과 눈물… 벽화마을로 떠나는 시간여행
입력 2011-03-09 17:42
‘붓질’로 거듭난 달동네… 고즈넉한 봄나들이
달동네에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그려져 있다. 거친 질감의 담벼락은 캔버스이고 비좁은 골목길은 상설전시장. 그곳에는 사철 지지 않는 꽃이 피어있고 하루 종일 새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최근에는 카메라를 들고 달동네 골목을 기웃거리는 관광객들도 부쩍 늘었다. 전국 달동네에 불고 있는 공공미술의 힘이다. 달동네의 역사와 삶의 흔적이 화석처럼 새겨진 벽화마을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속달동 납덕골마을(경기도 군포)=산으로 둘러싸인 수리산(488m) 자락의 납덕골은 벽화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대도시 인근에 위치한 마을이지만 오랜 세월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었던 터라 마을은 시계바늘이 멈춘 듯 고즈넉하다. ‘납덕’은 산속 넓은 골짜기라는 의미로 ‘넓다’에서 유래된 말.
납덕골 벽화는 마을 아래에 들어선 수리산갤러리의 김형태 서양화가가 어떻게 하면 마을을 아름답게 가꿀까 고민하다 동호회원 10여명을 불러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면서 시작됐다. 감동한 마을주민들은 음악회를 열어 작업비를 보태는 등 붓질 하나하나가 덧칠해져 예술마을로 거듭났다.
◇금광면 복거마을(경기도 안성)=복호리로 불렸던 복거마을은 호랑이마을이다. 마을입구에는 폐농기구와 드럼통으로 만들어진 호랑이 모형이 서 있고 지붕 위에도 호랑이가 귀엽게 앉아 있다. 뿐만이 아니다. 담장에는 담배 피우는 호랑이 모습도 그려져 방문객들을 동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복거마을의 호랑이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행정안전부의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다. 미술가들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스케치를 가르치고 문패를 만들면서 호랑이마을은 살기 좋은 마을로 변신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본 따 그린 벽화도 눈길을 끈다.
◇묵호 논골마을(강원도 동해)=빨간색과 파란색 지붕을 얹은 집들이 게딱지처럼 어깨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묵호의 논골마을은 한때 뱃사람과 무연탄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 벽화는 ‘붉은 언덕’으로 불렸던 논골마을에서 묵호등대에 이르는 등대오름길에 그려졌다.
벽화에 담긴 그림은 옛 묵호항의 정취와 산동네 마을의 풍경을 추억하는 내용들이다. 담벼락에는 출항하는 오징어배, 말린 오징어, 보따리를 이고 비탈을 오르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늙은 어부의 노래’라는 가슴 뭉클한 글귀도 적혀있다. 묵호등대에 오르면 동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면 양곡리마을(충남 천안)=천안 양곡리는 농촌 인심이 넉넉하게 살아있는 마을이다. 벽화로 변신한 200m 길이의 도로 변 옹벽이 나그네를 맞는다. 양곡리 마을의 벽화는 화려한 그림이 아니라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대부분이라 고향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벽화는 쓰지 않는 축사와 컨테이너 박스를 캔버스 삼아 그린 동물농장 그림이다. 주인공인 돼지, 닭, 개, 염소 등이 금방이라도 벽화에서 뛰어나와 골목길을 돌아다닐 것 같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허름한 방앗간과 오랜 세월에 걸쳐 마을을 지켜온 한옥들도 볼거리.
◇문현동 안동네(부산 남구)=‘2008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주거환경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부산 안동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스산한 회색빛 골목에서 화사한 원색의 골목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부산의 대표적 달동네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안동네의 골목은 사람 두 명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비좁다. 집들은 대부분 블록집으로 지붕에는 슬레이트를 얹었다. 지붕도 낮고 담장도 가슴 높이지만 다양한 벽화로 인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골목마다 스며있는 진솔한 생활의 풍경을 만나는 것도 안동네 여행의 묘미다.
◇동호동 동피랑마을(경남 통영)=통영항을 바라보는 언덕배기에 자리한 동피랑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생긴 달동네. 통영시가 동포루를 복원하기 위해 마을을 철거하려고 하자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벽화를 그렸고 이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통영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동피랑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으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오르면 담장이나 옹벽을 캔버스 삼은 화려한 색채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좁은 골목을 걷다보면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바다 속 풍경도 만난다. 바다가 보이는 구멍가게 카페에서 종이컵에 봉지커피를 타먹는 낭만도 맛볼 수 있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