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정 하나로 오지서 목숨건 선교… 하지만 선교사는 슈퍼맨 아니랍니다
입력 2011-03-08 18:07
B국 한 마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A선교사는 반가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가끔 현지인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장한 청년 5명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선교사를 제압하고 머리에 두건을 씌웠다. 곧이어 선교사 차를 빼앗아 어디론가 끌고 갔다. 폭행당한 A선교사는 늑골 골절, 두개골 함몰 등 부상을 입었다. 파송 단체는 A선교사를 급히 한국으로 입국시켜 정밀진단을 받게 했다. 선교사가 도착하자 병원 치료를 하는 동안 납치와 폭행의 동기를 분석, 실사하는 면담 과정을 가졌다.
선교사 위기관리 전문단체인 한국위기관리재단(이사장 이시영)이 8일 펴낸 ‘선교사와 지역교회를 위한 위기사례 연구’에서 밝힌 내용이다. 선교사 위기관리 분야로는 첫 사례집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례집은 현장 선교사들이 겪은 위기와 파송 단체 조치, 검토와 평가 등으로 구성됐다.
A선교사 이야기는 ‘상황적 위기’의 단면이다. 상황적 위기는 자연재해와 천재지변, 질병과 각종 범죄, 안전사고와 내전·소요 사태, 테러와 인질 납치, 추방 등이 해당된다. 선교사들에 대한 범죄 위험은 상존했지만 근래 들어 세계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유형도 다양해져 무장공격, 자동차 탈취, 강도, 총기난사, 납치와 인질 등이다.
사례집을 공동 발간한 도문갑 한국위기관리재단 자문위원은 “최근 납치에 따른 인질 문제가 선교단체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주는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며 “위기에 따른 해당 단체의 초기 대응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측이 어렵고 돌발적인 위기가 상황적 위기라면 예측 가능하고 점진적인 위기도 존재한다. ‘발전적 위기’는 상황적 위기와 달리 선교 사역 중에 일어날 수 있는 관계 단절과 불화, 윤리·도덕적 해이에서 나온다.
B선교사는 선교 열정이 많았다. 선교 후원비를 받으면 대부분 사역비로 지출했다. 하지만 가정을 돌보지 못했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최소 생활비도 남겨놓지 않고 사역비로 사용했다.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가정관리 위기가 발생하자 단체는 가정을 안정시키며 사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권고를 수차례 전달했고 현지 팀사역 규정에 맞게 처신할 것을 요청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김정한 국장은 “선교사 간에 발생하는 갈등과 불화는 가장 흔한 발전적 위기의 유형”이라며 “발전적 위기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역공동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어려운 성향을 보이는 선교사에게는 초기에 중립적 전문가가 개인적 상담이나 디브리핑(귀환보고)을 진행하는 것이 더 큰 위기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를 ‘영적 철인’이나 ‘슈퍼맨’ 등으로 인식하고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 열정 하나로 어떠한 위험이나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 역시 연약한 사람이며 각종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해마다 파송 선교사가 증가하면서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은 커졌다.
한국위기관리재단 김진대 사무총장은 “현장 선교사들 사이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며 “사례집은 교단과 선교단체, 파송교회에 선교사를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