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낙타는 길을 묻지 않는다

입력 2011-03-08 17:41


척박한 사막에서 낙타는 삶의 일부이다.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틸 수 있고, 지치지 않고 모래 위를 걸을 수 있다. 고비사막에 가면 ‘디리스’라는 딱딱한 풀이 있다. 어떤 동물도 뜯지 못하는 그 풀을 낙타는 먹을 수 있다.

낙타의 기억력은 대단하다. 옛날 중국에서 유럽까지 비단을 나를 때 어린 낙타에 비단을 실어 서역의 대장정을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비단을 다 팔고 돌아올 때는 계절이 바뀌어 산야에 흰 눈이 덮인다.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럴 때는 나이든 낙타에게 선두를 맡긴다. 아무리 모래바람이 불고 몇 시간 만에 모래 능선이 생기다 없어져도 돌아오는 길을 낙타는 안다고 한다.

나는 새 학기가 되면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직원들에게 낙타 얘기를 들려준다. 일을 하다 판단이 잘 서지 않거나 갈등이 일 때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선배들과 대화를 해보라고 권한다. 그들은 먼저 길을 가본 사람이기에 앞길에 가시밭이 있는지, 오르막이 있는지, 물웅덩이가 있는지 알고 있으니 지름길을 알려줄 것이라고 이른다.

10여년 전 대학 선배와 함께 강원도 가까운 곳에 발령 난 적이 있었다. 마땅히 묵을 곳이 없어 첫날 인사한 여직원 집에서 신세를 지고 다음날 출근했다. 선배는 방을 얻었다며 관사 열쇠를 내게 보여주었다. 용케 방을 구한 그가 부러워 어떻게 하면 방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관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방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라고 했다. 거뭇한 산 그림자가 창으로 드리워지자 또 오늘 밤은 어디서 보낼지 머릿속이 뒤숭숭해 왔다. 그때 그 선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봤는데, 나는 축구 코치하고 같이 방을 쓸 테니 먼저 방을 써.”

낯선 땅에서 몸 뉠 곳을 정하지 못하고 배회할 후배가 종일 맘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도 낯선 곳이기는 마찬가지. 나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선배의 모습을 그날 그에게서 배웠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문학을 붙들고 있을 때, 나는 승진하는 동료들이 부러웠다. 문학을 계속해야 할지, 승진의 길로 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자신의 앞길을 혼자 결정하지 못하고 선배들을 만나기만 하면 귀찮게 물었다. 그런데 어쩌면 선배들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답을 주었다. “두 개의 길을 함께 가 보라.”

경험이 많은 낙타가 어린 낙타들을 이끌고 고향을 찾아가듯 내겐 아직 많은 날에 인생의 선배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후배들이 밤늦게라도 찾아와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싶은 선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밤중에 포장마차의 휘장을 열고 앉아 그들의 고뇌를 밤새워 들어줄 수 있는 선배이고 싶다. 새벽 고속도로에서 구조를 요청하면 맨 먼저 달려가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낙타의 눈은 사막을 걷는 내내 늘 젖어 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안으로 삭이며 가는 고행길이지만 사막의 오아시스나 모래바람에 연연하지 않으며 의연히 길을 가는 낙타. 그를 닮고 싶다.

조미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