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가 세무검증제 누더기로 만들어서야

입력 2011-03-08 17:45

정부가 탈세 우려가 큰 고소득 전문직을 대상으로 ‘세무검증제’ 도입을 발표한 건 지난해 8월이었다. 이는 세제개편안의 핵심이었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 세무 대리인으로부터 장부 기장의 정확성을 확인받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당시 정부는 의욕적이었다. 공평 과세와 공정사회 구현을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국회 논의 및 상임위 통과 과정에서 결국 정부 원안이 대폭 후퇴하면서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변호사협회 등 이해집단의 반발과 로비 등으로 지난해 법안 처리가 무산되자 정부가 일단 제도라도 도입하고자 수정안을 낸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바로 국회에 있다. 직역 이기주의에 매몰돼 강력한 반대에 나선 율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누더기 입법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이들은 특정계층에만 세무검증을 실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위헌소지가 있다고 반대했다. 이로 인해 정부가 마지못해 수정안을 제출하자 국회는 7일 기획재정위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원안과 수정안은 천양지차다. 우선 ‘세무검증제’는 거부감이 크다는 이유로 명칭이 ‘성실신고확인제’로 바뀌었다. 적용 대상 기준은 연 수입 5억원 이상에서 7억5000만원 이상으로 높아졌다. 반면 불이행 가산세는 10%에서 5%로 낮아졌다. 대상 범위도 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에서 전체 자영업으로 확대됐다. 언뜻 대상자가 늘어나 세금 탈루를 더 막을 수 있겠거니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기준 상향으로 적지 않은 전문직들이 대상에서 아예 빠졌고, 대상 확대로 타깃 업종을 집중 검증하려던 도입 취지가 희석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변호사 등의 입장에선 제도가 대폭 완화된 셈이다. 정부가 표방한 공평과세와는 거리가 멀다. 현재 개인사업자 소득파악률이 60%대에 머물고,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율은 40%에 달한다. 그런데도 제도 개선에 나서기는커녕 자신과 ‘친정’의 밥그릇을 지키고자 혈안이 돼 있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뻔뻔스럽다. 율사 출신들이 즐비한 법사위에서 또 어떻게 변질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