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보호종 보존” vs “개발 우선” 사전 조율한다
입력 2011-03-08 10:47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야생조류 서식환경 평가’ 보고서
경부고속철도와 꼬리치레도롱뇽, 인천국제공항과 검은머리갈매기, 충주 도로의 붉은박쥐, 김포우회도로 건설과 재두루미, 강원도 골프장과 하늘다람쥐와 까막딱따구리, ….
개발사업 진행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법정보호 동물이 나타나 개발과 보존을 놓고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는 사례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생물종의 서식지 평가라는 도구를 들고 나왔다. KEI는 최근 펴낸 보고서를 통해 서식지 평가를 현행 환경영향평가에 도입하면 개발사업과 주요 생물종 서식지 훼손을 둘러싼 끊임없는 논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발 늦는 법정보호종 대책=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갈마곡리에 있는 18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 예정지에서 환경영향평가에서 누락된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지난달 추가로 발견됐다. 녹색연합과 강원도 골프장 문제해결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는 2월 중 생태계 조사를 한 결과 까막딱따구리(멸종위기2급 야생동물, 천연기념물242호) 4마리와 하늘다람쥐(멸종위기2급 야생동물, 천연기념물328호) 4마리, 그리고 삵(멸종위기2급 야생동물) 등 법적보호종이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에 참가한 녹색연합 활동가 배보람씨는 “하늘다람쥐가 갈마곡리 숲 일대를 서식처로 삼고 안정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녹색연합이 단 두 차례 조사를 통해 까막딱따구리, 하늘다람쥐, 삵을 목격하거나 서식흔적을 찾았는데도 환경영향평가와 사전환경성 검토 단계에서 이런 법적보호종의 서식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 일대 여산골프장 건설예정지에서도 하늘다람쥐와 수달 등 멸종위기종의 서식사실이 지난해 말 확인됐다. 원주여산골프장대책위원회와 사업자인 ㈜여산레저, 원주시가 지난해 10∼12월 실시한 민관 공동 생태계조사 결과다.
녹색연합은 “환경청은 골프장에 대한 사전환경성 검토단계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환경부 고시에 따르면 멸종위기종 서식지에는 원칙적으로 골프장을 지을 수 없다. 그러나 환경청 관계자는 “골프장 전체면적도 사전환경성 검토 이후 환경영향평가 초안에는 줄었다”며 “환경영향이 고려된 만큼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되지만 인공둥지 조성 등의 보완책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식지 개념의 법제화부터=문제는 현행 환경영향평가에 동식물 종의 서식지에 관한 조사 대목이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우선 서식지 개념부터가 불분명하다. 자연환경보전법, 야생동식물보호법, 문화재보호법 등 여러 법에 그 개념이 다르게 산재해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생물종의 서식특성과 활동권이나 이동거리 등을 고려하지 않고 발견지점을 중심으로 획일적으로 거리를 정한 인접지역에 대해 보호대상 서식지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KEI가 펴낸 ‘법정보호 야생조류의 서식환경 평가방안’ 보고서는 서식지 개념에 주목한다. 서식지의 일반적 정의는 ‘생존, 생식 및 증식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 생물종의 생활사를 충족시키는 공간’이다. 이를 요소별로 설명하면 ‘개체군의 생존과 번식을 결정짓는 먹이, 둥지재료 등의 자원과 환경적 요인의 일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환경적 요인은 기온, 토양, 경사도와 같은 비생물변수와 경쟁자, 포식자와 같은 생물변수를 포함한다. 즉 서식지는 자원과 조건(환경적 요인)으로 구성된다. 노백호 연구위원은 “서식지는 해당 종의 생활사에 의해 필요로 하는 물리적 환경과 실제 출현지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규정하되 서식환경평가를 통해 드러난 잠재적 서식지도 범위에 포함한다”고 말했다.
◇서식지평가절차 확립을 위한 법정보호 조류 23종 평가 모델 구축=노 위원은 서식실태에 대한 연구성과가 그나마 축적돼 있고, 관찰하기 쉬운 법정보호종 조류 71종 가운데 큰고니, 흰목물떼새, 큰기러기, 까막딱따구리, 검은머리갈매기 등 23종을 대상으로 서식지평가 모델을 구축했다. 노 위원은 “조류의 경우 기능적 특성에 따라 둥지를 튼 곳, 먹이활동을 하는 곳, 월동지와 중간기착지 등이 서식지에 포함되고 서식지 관리목표에 따라 개체 유지, 증식, 조절 세 단계에 걸쳐 필요한 최소의 공간을 테두리로 적용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980년대 초반부터 멸종위기종들을 대상으로 서식지적합성지수(HSI) 모형개발을 통해 서식지평가절차를 확립하고 있다. 노 위원은 이번 연구보고서에서 까막딱따구리와 황조롱이를 대상으로 문헌고찰과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전국 서식지도를 완성, 서식지 모형을 개발했다. 그는 “국내 야생동물 서식환경 연구를 보면 GIS (지리정보시스템) 기법은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으나 모형개발 및 검증에 필요한 동물분포자료는 초보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까막딱따구리의 서식환경조사는 번식, 자원(먹이) 및 방해요인 등 3가지 서식요구사항으로 구분돼 있다. 서식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변수로는 수종, 흉고직경, 수림유형(이상 번식), 잠재먹이의 다양성과 생물량, 고사목(자원), 시야 확보를 위한 개활정도와 사람의 출입정도(방해요인) 등 13개 사항이 나열돼 있다. 이와 함께 이들 항목별로 좋고 나쁨의 정도를 나타내는 서식적합성 지수의 판정기준이 제시돼 있다. 예컨대 까막딱따구리의 경우 나무종류, 산림면적, 고사목의 수령 등에 대해 1∼3, 또는 1∼6까지의 등급별로 기준이 제시된다.
이번 서식환경 조사를 바탕으로 생물종별 서식환경평가지침서를 개발하면 개발 현장에서는 이를 서식환경조사에 적용할 수 있다. 즉 정부기관, 사업자 및 환경영향평가 대행자가 개발사업 전에 이행하는 서식환경조사의 지침이 되는 것이다. 환경부는 조류에 이어 올해 양서류와 포유류에 대해서도 서식환경평가모델 구축작업에 돌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 위원은 “사업자들에게 알아서 희귀종 조사를 미리 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최소한 법정보호종 만이라도 우선적으로 서식지평가와 서식환경평가지침서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노 위원은 “사전환경성검토 관련법에 서식환경 평가를 점차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하겠지만 당장은 환경부가 우선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