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농민공 다 어디갔나” 중국이 아우성… 동부 연해지역 인력난 ‘융궁황’
입력 2011-03-08 17:37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정부 업무보고에서 파격적인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 도시근로자) 대책을 내놓았다. 농민공들의 숙원이었던 거주 도시 호적취득과 자녀취학, 주택 및 사회보장 등에서 차별철폐는 물론 최저임금 13% 이상 인상까지. 이는 농민공 문제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농민공들은 그동안 중국 발전의 ‘성장 축’ 역할을 했음에도 불평등한 처우로 사회 소외계층으로 전락했다. 많은 농민공들이 대도시를 떠나고 있다. 이 때문에 광둥성을 비롯해 산둥(山東)성, 장쑤(江蘇)성, 저장(浙江)성, 푸젠(福建)성 등 동부 연해지역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도시 제조업체가 심각한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중국에서 융궁황(用工荒·근로자 부족으로 공황상태에 빠진 상황) 문제가 주요 현안이 됐다.
◇‘귀한 몸’ 농민공을 잡아라=세계 최대 의류공장이 집중된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 루장춘(鷺江村) 거리 곳곳에는 요즘 ‘자오궁(招工·직원 모집)’ 게시판이 넘쳐난다. 행인들이 북적거리는 곳에는 ‘자오궁’ 푯말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도 많다. 열차역이나 버스정류장 등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는 호객꾼처럼 어김없이 구인(求人) 인사들이 등장한다.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3일 “‘융궁황’으로 농민공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공장’으로 불리는 광둥성을 중심으로 한 ‘주장삼각주(珠江三角洲)’에선 중소 제조업체들 간 피 말리는 농민공 붙잡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주장삼각주의 농민공 집중지역 둥관(東莞)의 경우 지난달 춘제(春節·설) 이후 600여 기업이 1만2000여개 일자리를 인력시장에 내놓으며 구인에 나섰다. 하지만 구직자는 6000여명에 불과했다. 둥관의 한 봉제공장 사장은 “춘제 연휴 이후 직원의 30%가 복귀하지 않아 공장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인력시장을 돌아다니지만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고 하소연했다. 광둥성에서만 부족한 인력이 2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난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창장(長江)삼각주 및 산둥(山東)성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춘제 연휴가 끝난 지난달 9일 상하이, 저장성, 장쑤성 등에서는 구직자가 적어 고용계약률이 전체 일자리의 10% 미만에 불과했다.
◇돌아오지 않는 농민공 vs 떠난 농민공=춘제 연휴 끝 무렵인 지난달 7일 후난(湖南)성 샹샹(湘鄕). 20여개 지역회사가 200여개 일자리를 놓고 귀향한 농민공들을 대상으로 취업박람회를 가졌다. 광둥성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춘제 때 귀향한 20대 저우스쿤(周時坤)은 새 직장을 구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대도시에서 무시당하지 않아도 되고, 춘제 때 귀향 열차표를 구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다”면서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일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시 푸난(阜南)현에서도 춘제 연휴 때 50여개 회사가 직원을 모집했다. 이처럼 중서부 지역에선 춘제 농민공 잡기 특수가 나타나기도 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전국 균형 발전을 추진하면서 중서부 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을 집중 개발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 개발붐이 일면서 공장도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농민공 대부분이 돈 벌러 동부지역으로 떠나 이들 지역도 인력난을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동부는 ‘돌아오지 않는 농민공’으로, 중서부는 ‘떠난 농민공’으로 모두가 인력난 때문에 울상 짓는 기이한 상황에 처했다.
정협 위원인 중국 사회과학원 징톈쿠이(景天魁) 연구원은 “용궁황 문제는 취업뿐 아니라 산업 전환 문제와 관련이 있다”면서 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줄 잇는 임금인상=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농민공은 총 2억4200만명이다. 이 중 타지역으로 떠난 외지 농민공은 1억5300만명이다. 특히 외지 농민공 가운데 1억명 정도는 바링허우(80後·1980년대생), 지우링허우(90後·1990년대생)인 신세대 농민공이다. 문제는 1970년대 후반 실시된 ‘한 자녀 갖기’ 정책으로 이들 신세대 농민공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20∼34세 젊은층 노동인구는 2000년에 비해 7%나 감소했다.
융궁황 현상은 결국 임금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0년 농민공의 월평균 급여는 1690 위안(28만7000원)으로 2005년의 875 위안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다. 광둥성과 산둥성은 이달 1일부터 최저임금을 각각 18.2%, 28.0% 인상했다. 올 들어 베이징시가 1월 1일부터 최저임금을 960위안에서 20.8% 오른 1160 위안으로 올린 걸 비롯해 산시(陝西)성, 장쑤성, 충칭(重慶)시 등이 이미 최저임금을 올렸다. 지린성(吉林省)과 닝샤(寧夏)회족자치구 등도 인상할 계획이다. 중국 인력자원및사회보장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31개 성·직할시·자치구 중 충칭시를 제외한 30곳에서 최저임금이 평균 28.8% 상승했다.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의 시대는 이젠 끝났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