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송환’ 팽팽한 기싸움… 北 “귀순 밝힌 4명 가족과 가겠다” 실무접촉 제의

입력 2011-03-07 21:33

북한이 지난달 5일 남하한 주민 31명 중 남한 잔류 의사를 밝힌 4명의 가족 면담을 제의했다. 통일부는 7일 “북측 조선적십자회가 주민 송환문제를 다루기 위해 남북적십자회담 실무접촉을 열자는 내용의 통지문을 오전 9시30분쯤 보냈다”면서 “접촉 날짜와 시간은 9일 오전 10시, 장소는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로 제의해 왔다”고 밝혔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은 “박용일 적십자회 중앙위원을 비롯한 3명이 남측에 귀순 의사를 밝힌 4명의 가족과 함께 나올 것”이라며 “남측도 (귀순 의사를 밝힌) 당사자 4명을 데리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정오쯤 대한적십자사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적십자회담 실무접촉 제의를 수용하고 다만 장소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자고 수정 제의했다. 아울러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27명을 이날 오후 4시에 송환할 것이며 필요한 조치를 요구했다.

또 정부는 북측의 가족면담 제의에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귀순 의사를 북측에 확인시켜주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을 접촉한 중립국감독위원회 관계자를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에 참석시켜 증언을 하도록 하거나, 귀순 의사를 밝힌 영상물을 보여주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치적 보호를 요청하거나 망명을 했을 때 그 판단은 접수한 국가의 주권사항”이라며 “가족들 앞에서 자유의사를 확인하거나 공개적인 자리에 입회시켜 놓고 증명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은 오후 6시쯤 재차 통지문을 보내 “4명의 귀순을 인정할 수 없으며 직접대면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소도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열어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남북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27명 송환도 장기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적십자회담과 함께 가족 면담을 추진한 것은 주민 송환문제를 대남 압박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우리 정부는 귀순자 신병과 관련해서는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이런 남측의 입장을 십분 활용할 전망이다. 남측의 ‘귀순공작’으로 4명이 돌아오지 못한 데다 가족 면담마저 가로막아 이산가족을 만들었다고 선전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장소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로 고집하는 배경도 주목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회담은 그동안 북측 통일각과 남측 평화의집을 오가며 열렸고, 중립국감독위원회는 이용된 적이 없다. 북한이 굳이 이런 장소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4명의 자유의사를 확인하는 데 객관적인 자세로 임할 것임을 대외에 선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유엔군사령부가 지난 4일 “유엔사 특별조사단이 개별면담을 해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이 본인 의사에 따라 대한민국에 남길 원했고, 나머지 27명은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북한 판문점대표부에 보낸 사실이 밝혀졌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