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선생님의 실종을 애도함
입력 2011-03-07 17:49
시마다 가쓰유키(嶋田克之)는 이십 수년 전 일본 유학시절에 만났던 후배다. 지도교수 데라오 마코토(寺尾誠) 선생님 밑에서 3년 반을 함께 배웠다. 석사과정 입학 때 받은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이 발견됐으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병마와 씨름하면서도 학업을 이어갔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 늘 모자를 쓰고 학교에 왔다. 그래도 석사학위논문은 1년 미뤄야 했다. 이듬해 어렵사리 논문은 썼으나 같은 지도교수 밑의 박사과정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학습도우미(튜터)를 떠맡았던 필자가 볼 때도 완성도는 많이 떨어졌다.
지도교수는 그에게 두 가지 길을 내놓았다. 박사과정에 진학할 생각이라면 석사논문은 1년 더 준비하는 게 좋겠고, 그게 아니라면 이번에 논문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그런데 시마다는 자신의 열정을 끝내 접지 않았다. 1년 더 논문에 매진하겠다고 답했다.
또 다른 김인혜 교수 없을까
문제는 그의 석사 4년차 때 벌어졌다. 겨우 두어 주일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 같았는데 느닷없이 그의 부음이 들려왔다. 급격히 병세가 악화됐다는 것이다. 황망한 마음으로 지도교수와 함께 일본국립암센터에 안치된 그를 찾았다.
암센터의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 앞에서 지도교수는 눈물을 흘리며 자책했다. “내가 병중인 그에게 너무 많은 학습을 요구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받았다. “아닙니다. 우리 애는 이미 3년 전에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강한 지도가 있었기에 그에게 3년 이상의 삶이 허용됐던 것입니다.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슬픔과 안타까움이 생생하다. 아니 그것은 감동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제자에 대해서조차 한 치 흔들림 없었던 그간의 지도와 그 와중에 너무나 애절했을 선생님의 마음, 그리고 그런 선생님의 속내를 바로 헤아려 알고 있는 아버지의 대범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뜬금없이 이십 수년 전의 얘기를 소개하는 것은 최근 벌어진 김인혜 서울대 교수의 파면 사건 때문이다. 음악대학 성악과 지도교수의 학생 폭행과 지나친 금품수수가 파면을 자초한 것이라는 평이나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선생님 실종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진작 곪아터졌어야 했다. 필자의 아들도 현재 한 사립대학 성악과 3학년에 재학 중이라서 유사한 얘기는 이전부터 종종 듣고 있던 터였다. 지도교수의 방 청소를 학생들이 맡고 잡다한 소모품 및 일회용 집기 등을 학생들이 돈을 염출해 채운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란다.
놀라운 것은 음악과 학생들 사이에서 ‘빨아준다’는 속어가 뿌리내려 있고 그러한 행각이 관행처럼 만연돼 있다는 사실이다. 취재원의 주장을 과장 보도하거나 좋은 쪽으로 풀이해주는 것을 미디어업계에서 ‘빨아준다’고 하는데 학생들 입에서 그런 말이 쏟아진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師父냐 교수냐 선생님이냐
아들에게 이번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사건이 이렇게 크게 불거져 다행이죠. 그 덕분에 대부분의 교수들도 한동안은 조심할 테니 말예요.” 빨아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분석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강한 불신이 묻어나온다.
지도교수 공연티켓 강매, 불필요한 행사에 동원되거나 눈치 보며 눈도장 찍기, 정규 수업 이외의 과외 레슨 강요, 교수·학생 간의 전근대적인 지배·종속관계 등은 하루 속히 없어져야 할 것들이다. 혹 문제의 교수들은 자신들이 전근대시대의 권위적인 사부(師父)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긴 교수라는 이름도 썩 우호적이지 않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교수들은 넘치나 학생들의 마음을 담아줄 수 있는 품이 넉넉한 선생님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게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지 모른다. 오늘은 병중에 계신 데라오 선생님께 오랜만에 문안편지라도 써야겠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