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승일] 넘어진 나무가 정전사태 부른다
입력 2011-03-07 17:47
이번 겨울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오면서 우리나라의 전기 사용량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전력설비는 한계용량까지 가동됐고, 예비전력은 평상시 필요한 양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때 만일 나무가 전깃줄 위로 넘어지는 작은 사고라도 일어난다면 예기치 않은 대규모 정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러시아에서는 거센 바람과 폭설로 인해 나무가 쓰러지면서 인근 전깃줄을 덮치는 사고가 일어나 4만 가구가 열흘 동안이나 전기 없는 세상에서 떨며 지내야만 했다.
2003년 여름 미국 뉴욕 시내를 포함한 6000만 인구가 대정전을 겪었던 것도 실은 나무가 전깃줄 위로 넘어지면서 시작된 재앙이었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태풍 곤파스로 인해 일어난 정전사고 중 80% 정도는 전깃줄 주변의 나무가 넘어져 발생한 것이었다. 이렇게 잘못 넘어진 나무 한 그루가 전기 없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이 같은 재난이 또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관련 법령 개정을 포함한 근본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전깃줄과 가까운 가로수의 가지들을 잘라내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승인이 필요한데 여러 이유로 인해 적절한 시기에 승인을 받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또한 사유지 내의 나무로 인해 일어나는 정전사고와 관련한 법률 규정은 아직 갖춰지지도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사업법 제87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전깃줄 가까이에 있는 나무의 가지로 인한 위해가 예상될 경우 한국전력에서 가지들을 우선 잘라내고 추후 승인을 얻을 수 있도록 산림청과 지자체들은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키가 낮은 나무를 골라 가로수로 심도록 하는 법령도 제정됐으면 한다.
아울러 건축물 관리자가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도록 하는 ‘자연재해대책법 제27조’와 같이 사유지 내의 나무가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소유자가 한국전력의 가지치기 요청에 따르도록 하며, 소유자 스스로 미리 버팀대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할 필요도 있다. 비단 나무가 넘어져 일어나는 정전사고뿐 아니라 폭우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해 정전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이를 신속히 복구하기 위해 관련 기관들은 유기적이고 긴밀한 복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전기 공급 중단은 개개인의 생활에 막대한 불편을 가져올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나무가 쓰러지는 것과 같은 작은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음에도 이를 방치하면 큰 재앙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관련 법령 개정과 관계기관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런 재앙을 미연에 방지해 국민이 안심하고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승일(서울대 교수·전기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