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비밀] 믿음을 보시고

입력 2011-03-07 17:39


예수께서 가버나움의 집에 계실 때 한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이 몰려든 군중 때문에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지붕을 뜯고 병자가 누운 침상을 달아 내렸다는 이야기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병자를 메고 온 사람의 수는 마가복음에만 밝혀져 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막 2:3)

네 사람이 힘을 합해 무거운 것을 운반해 본 사람들은 이 기사를 읽고 큰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운반하는 것이 무거워 힘들기도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네 사람이 마음을 합하는 일이다.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그리고 성미가 급한 사람과 느린 사람이 힘을 합쳐 운반하려면 큰 사람은 허리를 낮추고 작은 사람은 치켜들고, 급한 사람은 천천히 걷고 느린 사람은 좀 더 재게 걸어야 한다. 병자가 누운 침상을 운반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침상의 수평을 유지하지 못하면 병자는 굴러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침상을 지붕 위로 올리고 또 아래로 달아 내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5)

예수께서는 병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를 메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 주셨던 것이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5)

우리나라는 아직도 반쪽의 몸을 쓰지 못하는 중풍병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키가 큰 정당도 있고 작은 정당도 있다. 급하니 빨리 가자는 정당도 있고 어지러우니 천천히 가자는 정당도 있다. 이들이 모두 제 주장대로 간다면 침상 위의 중풍병자는 땅에 떨어진다. 네 개의 정당이 잘 협력하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고쳐 주실 것이다. 우리가 반신불수의 몸으로도 부지런히 일하여 경제 규모를 세계 10위권으로 올려놓았는데 침상에서 일어선다면 얼마나 좋은 나라가 될 것인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이러한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중풍병자의 침상을 운반한 네 사람은 마치 하나님의 언약궤를 운반하는 제사장들과 같았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수 3:17)

제 방식대로 가다가 언약궤의 증거판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 크거나 작거나, 성미가 급하거나 느리거나, 교회는 함께 가는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눅 12:47)

작가 김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