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인에 정치헌금 받은 마에하라 외상 사퇴…日 간 정권 9개월만에 최대 위기

입력 2011-03-07 01:19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외국인인 재일 한국인으로부터 20만엔(약 270만원)의 정치헌금을 받아 야당으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아온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일본 외상이 마침내 사퇴했다.



마에하라 외상은 6일 밤 총리 관저에서 간 총리를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책임은 나에게 있으며 총리에게 사의를 표명해 승낙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교도통신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후임 외상은 당분간 간 총리가 겸임하거나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외무차관을 승진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간 총리, 취임 후 최대 위기=간 총리를 추대한 공신이자 가장 유력한 ‘포스트 간’ 후보인 마에하라 외상의 중도 하차로 간 정권은 더욱 입지가 좁아졌다. 야권은 여세를 몰아 간 총리 사임이나 중의원 해산을 압박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작년 6월 간 정부 출범 뒤 각료의 중도 하차는 마에하라 외상이 세 번째다. 간 총리와 민주당 집행부는 마에하라 외상의 퇴진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야권의 공세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간사장 그룹의 반발에 밀려 어쩔 수 없었다.

간 총리로서는 참의원의 여소야대와 오자와 그룹과의 내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정권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더욱이 야권은 예산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는데다 주부연금 누락 문제와 관련해 호소카와 리쓰오(細川律夫) 후생노동상에 대한 문책결의안도 검토하고 있다.

마에하라 외상의 정치헌금 문제는 니시다 쇼지(西田昌司) 참의원 의원이 지난 4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처음 제기했다. 지역구가 마에하라 외상과 같은 교토인 니시다 의원은 “외국인인 재일 한국인으로부터 2005년부터 4년간 최소 20만엔을 받지 않았느냐”고 추궁했고, 마에하라는 이를 인정했다. 일본 정치자금규정법에 따르면 정치인은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선 안 된다.

◇마에하라 외상은 누구=마에하라 외상은 참신한 신세대 정치인으로 폭넓은 여론의 지지를 얻어 왔다. 최근 언론 여론조사에서도 바람직한 총리 후보 1위에 올랐다. 국립 교토대 법대를 졸업하고 마쓰시다 정경숙을 거쳐 교토부 의회에서 정치인 생활을 시작했다. 1993년 중의원 의원이 된 뒤 6차례 당선됐다. 43세 때인 2005년 민주당 대표에 올랐으나 위조메일 문제로 6개월여 만에 사임했다.

재작년 8·30 총선으로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면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에서 국토교통상에 발탁됐다. 간 내각에서는 작년 9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의 뒤를 이어 외무상에 올랐다. 민주당 정권 내에서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힌다. 작년 간 총리의 한일 강제병합 100년 사죄 담화와 조선왕조실록 등 문화재 반환 협정도 측면에서 지원했다.

◇마에하라에 돈 준 한국인은=마에하라 외상에게 정치헌금을 준 재일 한국인은 교토시 야마시나구에서 38년 전부터 불고깃집을 하는 박모(76)씨 부부인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장남이 마에하라 외상과 동갑”이라며 “마에하라 외상이 중학교 2학년 때 이웃에 이사 온 뒤부터 한 가족처럼 지내 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자신의 처를 마에하라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등 스스럼없었고, 박씨 부부는 그를 자식처럼 대했다고 했다. 박씨는 “애경사 때마다 서로 돕고 있다”며 “외국인 정치헌금 금지법이 있는 줄 알았다면 돕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마에하라 외상은 니시다 의원이 이 문제를 폭로한 지난 4일 오후 박씨의 아내(72)에게 직접 전화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원교 기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