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의원들 “가자! 지역구로”… 의정은 뒷전
입력 2011-03-06 21:22
대정부질문과 상임위원회 개최로 숨 가쁘게 국회가 돌아갔던 지난주 한나라당 한 의원은 지역구인 부산에 4번이나 내려갔다. 이 의원은 6일 “총선이 1년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지역 행사와 모임 초대를 거절할 수가 없다”며 “부인이 대신 내려가는 것까지 합쳐 지난달 비행기값만 400만원 정도를 썼다”고 토로했다. 같은 당 수도권 한 초선의원은 “지역구와 국회에 머무는 시간이 지난해 5대 5 정도였다면 올해는 8대 2 정도로 지역구에 치중하고 있다”며 “내가 국회의원인지 구의원인지 모를 때가 있다”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로 인해 18대 국회 후반부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총선 우선주의에 매몰된 의원들의 ‘지역구 올인’ 행태는 각종 민생 현안을 도외시하는 것으로 비쳐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2일까지 4일 동안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 기간 내내 자리를 지킨 국회의원은 고작 3명에 불과했다. 질문에 나선 의원들조차 지역 민원성 발언 등으로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 고유의 역할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지난 3일 시작된 3월 임시국회에서도 의원 정족수가 부족해 상임위 전체회의 개의가 30분 이상 늦어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호남 출신 민주당 한 의원은 “그동안 ‘금귀월래’(金歸月來·금요일 오후 지역에 내려가 월요일 아침에 여의도행)를 원칙으로 했지만 의정보고회 등으로 회기 중에도 자리를 비우는 의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야 간 피 말리는 싸움이 예상되는 수도권 의원들은 지역 민원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초선·서울 양천을)은 “매달 둘째와 넷째 토요일을 ‘민원의 날’로 지정해 지역구민 민원을 직접 챙기고 있다”며 “상임위 활동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주요 현안에 아무래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본회의와 상임위와 달리 ‘동남권 신공항’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 지역 현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이나 모임에는 의원들이 어김없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내년 총선의 ‘룰’을 정할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경쟁률이 3대 1을 넘어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선출된 비례대표 의원들 역시 내년 총선 출마 지역을 놓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곳을 찾기 위해 저울질하는가 하면, 이미 지역구를 정한 의원들은 지역 주민과 스킨십을 늘려 나가는 등 벌써부터 총선 준비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행태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처장은 “여전히 상당수 의원들이 자기 홍보를 주민과의 소통으로 알고 지역 행사나 모임에서 공적을 나열하는 관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또 대의민주주의 실천을 최상의 임무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의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총선을 앞둔 국회 공동화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