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저축은행 부실 책임 대주주에 떠넘기나

입력 2011-03-06 21:20

정부가 저축은행 부실 재발 방지를 위해 조만간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대주주와 경영진의 처벌수위는 강화하려 하면서 정작 부실의 단초를 제공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감독 및 정책실패’는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 책임자 공개와 문책이라는 ‘알맹이’가 빠지면서 저축은행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예금보험기금 공동계정 설치도 무산 위기에 빠졌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주 초 발표하는 저축은행 종합대책에 저축은행 법인은 물론 대주주 개인에게 징벌적 성격의 과징금을 물리는 방안을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은 개별차주(대출자)에 대한 대출한도를 초과한 저축은행에 초과금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물리는데, 이 조항을 저축은행 대주주에게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이 자사 대주주에게 대출하면 전체 대출금액의 20%를 물게 돼 있는 과징금 역시 대주주에게도 부과된다.

하지만 그간 저축은행 건전성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은 없어 대주주 처벌수위만 높일 경우 만만찮은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저축은행 부실의 첫 단추를 잘못 뀄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른바 ‘88클럽’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88클럽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 이상, 고정이하 여신비율 8% 이하 요건을 충족하는 저축은행으로 대출금액이 자기자본의 20% 이내라면 동일인 80억원이라는 대출한도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이런 대출한도 예외규정이 저축은행의 무분별한 외형확장을 가져왔다며 사실상 저축은행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면서도 역시 정부 책임자 문책이나 처벌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88클럽 도입을 주도한 고위 당국자들이 현직에 있어 책임론을 수긍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감사원조차 당초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대해 벌여왔던 감사를 마치고 부실감독 책임자 징계안을 상정할 예정이었으나 돌연 연기했다. 감사원장이 취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지만, 정무위 여야의원들 사이에 저축은행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만큼 섣불리 감사 내용을 발표할 경우의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예보 공동계정 설치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결국 정부 책임론이란 암초 때문이다. 여야는 지난 3일에 이어 4일 법안심사 소위에서 예보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해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12일까지 처리가 불투명한 상태다.

민주당 관계자는 “저축은행 구조조정 재원이 필요하면 공적자금을 사용하는 게 원칙인데 이 경우 국회에서 금융감독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이 불가피할 것을 우려해 금융위가 예보 공동계정이라는 편법을 들고 나왔다”며 “저축은행 부실 책임자 명단공개와 문책이 전제되지 않고는 공동계정 설치를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