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짐 나눠진 자, 마지막 예배… 헐리는 성남 주민교회 주민공동체로 새 출발
입력 2011-03-06 18:13
“이 예배당에서 드리는 마지막 주일예배입니다.”6일 오전 11시 경기도 성남 태평동 주민교회. 복도와 계단 등 교회 내부는 곳곳이 허물어져 있다. 빈 공간마다 빼곡한 색색의 낙서를 보며 네댓 살 여자 아이가 “벽에 그림 그리면 안 되는데…”라고 중얼거리자 곁에 선 아빠가 미소를 짓는다. 200여명이 꽉 들어찬 예배당도 어수선하다. 의자들을 며칠 전 원하는 단체에 줘 버려 교인들은 방석을 놓고 바닥에 앉았다. 그런데도 마이크도 없이 설교하는 이해학(67) 목사의 목소리는 교인들 귀마다 찰떡같이 들리는 모양이다. 건물의 30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되짚어 보는 설교에 교인들의 표정은 추억에 잠겼다.
예배 중 성찬식을 위해 교인들은 벽을 따라 줄을 섰다. 벽에는 1973년 창립 현판식, 7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수차례 옥살이를 한 이 목사(당시 전도사)를 위한 금식기도회, 81년 교회당 기공식, 빈민 노동자 철거민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한 사역들, 87년 6월 항쟁, 93년 남북인간띠잇기에 동참한 현장 등 교회 역사가 사진으로 전시돼 있다.
그중 86년 여신도회의 시청료 거부운동 기념사진을 강정숙(70) 명예권사가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 뒷줄 수줍은 표정의 여인이 자신이라며 이제는 주름이 푸근하게 팬 얼굴로 웃는다. 교회당이 지어진 81년부터 30년간 꼬박 교회의 사회 선교에 동참해 왔다는 강 권사는 “아침에 예배실을 치우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 했다.
오후 1시부터는 ‘주민교회 빈집잔치’ 오프닝 행사가 진행됐다. 이날부터 12일까지 1주일간 교회의 빈 공간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된다. 노래패와 풍물패, 인디 밴드의 공연과 연극, 대형 벽화 그리기, 교회 내에 텐트 치고 1박을 하는 ‘빈집 캠프’, 초대교회 카타콤을 체험하는 수요 촛불예배 등이다. 기간 내내 교인들은 망치 등으로 건물을 해체해 그 잔해를 간직할 수 있다.
행사를 기획한 장건(58) 장로는 “민주화운동과 통일 인권, 그리고 지역주민 운동에 기여해 온 건물을 그냥 허물기는 아쉬워서 역사를 더 잘 기억하고 새 출발을 기념하기 위해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주부터 교회는 길 건너 ‘주민 신용협동조합’ 건물 3층 강당에서 예배를 드린다. 주민 신협은 당초 성남 지역의 빈민을 위한 ‘생명 공동체’를 꿈꿨던 이 목사가 교회 창립 초기에 시작한 것으로 79년 정식 신용협동조합으로 발족했으며 지금은 자산 1000억원 규모의 성남 수정구 지역 신협으로 성장했다. 89년 시작해 유기농산물 직거래 운동, 조합원 자치 활동 등을 벌이는 주민생활협동조합도 교회의 ‘주민 공동체 운동’의 산물이다.
이 운동은 앞으로 더 날개를 달 전망이다. 내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주민태평동락 커뮤니티’가 본격적인 도심형 주민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지상 11층, 지하 4층 구모로 세워질 주상복합 건물에는 82가구의 도시형 생활주택이 들어서고, 나머지 공간도 공동육아시설, 빨래방, 유기농 식당 등 주민자치시설로 채워진다.
아직 남은 과제는 90년대 중반부터 교회 지하에 자리잡아 온 성남이주민센터, 중국동포교회, 성남이주민교회, 이주민쉼터 중에서 이주민 50명이 살고 있는 쉼터가 이주할 곳을 찾는 일이다. 교회는 쉼터의 이사가 완료될 때까지 건물 철거를 서두르지 않을 계획이다.
행사가 다 끝나고 방석마저 치워진 예배당에는 십자가와 함께 이사야서 41장 18절이 새겨진 부조 장식물만 남았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는 말씀은 예배 때 이 목사가 했던 “우리에게 앞으로 더 큰 고난의 세월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더 가깝게 갈 수 있는 믿음의 역사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도 보였다.
성남=글·사진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