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맹광호] 게임산업보다 청소년이 중요하다
입력 2011-03-06 18:02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말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합의를 통해 소위 인터넷 ‘셧다운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 법률안이 자칫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놓였다.
이 법률안은 청소년들의 심각한 인터넷게임 사용 실태와 이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줄여보기 위해 심야 시간대만이라도 인터넷 게임을 하지 않고 잠을 자게 하자는 여성부와 청소년단체들의 최소한의 희망이 걸린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률안 제출에 함께했던 문화부가 최근 셧다운제 규제 대상에서 모바일 게임 이용만은 예외로 하자는 의견을 여성부 측에 제안해 왔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과 이로 인한 건강상 피해 실태, 인터넷 중독자에 의해 저질러지는 끔찍한 사건들은 언론을 통해 이미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터이다. 얼마 전 발표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이하 청소년의 14.3%인 약 100여만명이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한다.
20대 이하 100만명 중독상태
문제는 이들의 인터넷 중독률이 날로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독에 빠지는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학생들의 인터넷 중독률이 중학생보다 높은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게임 업체들은 인터넷 중독의 문제를 청소년 개인이나 부모들이 해결해야 할 일로 치부하고 있으며, 인터넷 산업을 보호·육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부는 업계의 자율규제에 맡기자는 논리를 펴고 있다.
셧다운제 법률안을 만들 때부터 청소년보호법이 정한 19세까지의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자는 여성부에 맞서 14세까지로 보호 대상을 축소하자고 주장하던 문화부가 결국 16세까지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안에 동의했다. 그러던 문화부가 이번에는 밤낮없이 사용이 가능한 모바일에서의 게임 사용을 청소년들에게도 허용하자는 의견을 낸 것이다.
어쩌자고 이러는 것인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나라 어른들은 인터넷 게임에 몰입해 삶을 잃어가는 청소년들의 병든 실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한때 게임 산업에 종사했던 사람이 얼굴을 가린 채 TV에 나와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지 청소년들이 빨리 빠져들게 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했던 노력은 사실 거의 모든 게임산업 업체들도 한결같이 하고 있을 것이라고 폭로했다.
지난해 한 외신은 한국의 게임시장 규모가 약 55억 달러이며 매년 17%의 고속성장을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이러한 한국 게임시장의 초고속 성장이 한국인들의 인터넷 중독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셧다운制 도입돼야
과연 얼마나 더 많은 청소년들이 불면의 밤을 새워야 이 성장 목표가 달성될 것인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또 얼마나 무서운 사건들이 더 일어나게 될 것인가. 돈 되는 일이면 아이들의 건강이나 삶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어른들의 사고가 소름 끼칠 만큼 무섭다.
물론 규제만으로 인터넷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초경쟁사회에서 극심한 경쟁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인터넷 게임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응급상황이다. 그래서 응급처치가 필요한 때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부는 하기 싫고 놀 만한 것이 없어서 게임을 한다”는 청소년들의 인터넷 사용 이유에 이제는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맹광호 가톨릭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