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동반성장의 핵심은 신뢰
입력 2011-03-06 17:56
기업의 조세감면과 관련된 세법 조항은 매우 복잡해 납세자의 불만이 자주 제기된다. 신참 교수 시절에 선배 교수 부탁으로 중견기업 기업주와 공장 지방 이전 조세감면 문제에 대해 상담한 일이 있었다. 조세감면 적용요건은 세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되기 때문에 집행 과정에서 억울한 상황이 자주 생기는데 당시 사례도 명문화된 비과세 요건과의 차이가 분명해 과세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됐다.
설명을 들은 기업주는 매우 난감해하면서 임직원 모두 나서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특히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신입 직원이 송자 교수께 도움을 청하러 찾아갔다고 했다. 그 직원은 송 교수가 평소 수업시간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나 찾아오라고 했다면서 꼭 해결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고 했다.
송 교수는 후일 연세대 총장을 맡았으나 당시에는 평교수였고 필자와 같은 회계학 분야를 담당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믿음을 심어주었으면 졸업 후 회사 일을 들고 찾아갈 생각을 했는지 당시 필자로서는 놀라운 감동이었다. 그날 이후 필자도 학생들에게 정성을 다해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했지만 송 교수의 들메끈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지경이다. 기업 경영에 대한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송 교수는 졸업생뿐 아니라 기업가들도 자문을 구하고 싶은 대표적 사회원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추구하던 이명박 정부가 국무총리 출신 정운찬 교수를 동반성장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정 위원장은 대기업을 눌러 신속한 효과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동반성장 점수 평가’와 ‘초과이익 공유제’라는 놀랄 만한 화두를 내놓았다. 그의 정치적 포지션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정치권 일부가 ‘좌파’ ‘사회주의’ 등의 전투적 수사를 동원해 극렬하게 비난하는 가운데 정 위원장도 더욱 강경한 자세로 맞서고 있다.
원가 상승분을 가격 인상으로 보상받기 쉬운 과거 공기업 출신 민영화 기업과 조선업 등의 극히 미미한 수준의 협력업체 지원이 초과이익 공유 사례로 부풀려지는 가운데 치열한 국제경쟁에 놓인 수출 대기업의 불만이 높다. ‘초과이익’이라는 출처불명의 먹잇감과 ‘동반성장 지표’라는 정체불명의 시험지를 놓고 다투는 사이에 우리 기업이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국제경쟁력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커피 원산지의 노동 착취를 명분으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정무역 운동가들이 동반성장 평가 결과를 중소 협력업체 착취 증거로 몰아붙여 우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치는 사태도 우려된다. 대기업 제품이 경쟁력을 잃고 국제시장에서 따돌림을 당하면 협력업체 일거리도 줄어들어 동반성장이 아닌 동반파산을 초래할 수도 있다.
동반성장은 공정거래위원회 중심의 엄정한 경쟁정책 집행과 대기업 및 중소기업 단체와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순수 민간그룹의 자율조정으로 이원화해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동반성장위원회 같이 애매한 위상의 기구는 오히려 새로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하도급계약에서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부당행위는 공정거래 법규 정비와 철저한 감독을 통해 법과 경제 질서 태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부당행위가 확인되면 과징금 이외에도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이 주어져야 한다.
아울러 교섭력에서 차이가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갈등을 사례별로 조정하기 위해 경영, 경제, 법률, 행정, 기술 분야의 사회원로가 참여하는 자문그룹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사회원로들이 필요에 따라 대기업 회장과도 직접 접촉해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내놓도록 해야 한다. 자문 참여자의 호칭도 위원장이나 호민관 같은 거창한 힘을 표방하기보다는 ‘동반성장 도우미’ 수준의 봉사자세가 묻어나는 것이 좋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신뢰가 핵심인 동반성장은 차가운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풀어야 할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일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