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롱런 비결은 맛깔난 변신… 새 옷 입고 돌아온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입력 2011-03-06 17:20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에서 지난달 23일 막을 올린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는 국내 창작 뮤지컬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오는 5월 29일까지 공연되는 이 작품에 쏠리는 관심이 뜨겁다. 1995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후 롱런해 뮤지컬 팬에게 익숙할 테지만, 이번이 국내에서는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관객들을 소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2010년 일본 전국 투어를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온 ‘한류 뮤지컬’이라는 점도 대중의 관심을 높였다.

‘사랑은 비를 타고’ 이번 공연은 지난 17년간 작품을 지탱한 주제의식은 간직하면서 시대에 맞게 옷을 갈아입었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세 동생을 뒷바라지하는 데 자신의 인생을 소모한 큰형 동욱과 그런 형이 못마땅한 막내 동생 동현의 갈등과 화해가 기본 줄거리다. 형제 사이에 갑작스레 끼어든 이벤트회사 여직원 유미리가 형제의 화해를 돕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동욱의 생일이지만 어느 동생도 찾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밖에는 처연하게 비가 내린다. 7년 만에 집에 동현이 찾아오면서 형제들이 그간 쌓아놓은 이야기를 나누고 극적인 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코믹한 터치로 그렸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어느 하나 밉지 않게 그려내는 따뜻한 시선도 여전하다.

그간 이 작품은 오만석 엄기준 신성록 등 뮤지컬 스타로 성장한 배우 100여명이 거쳐 갔다. 이번 공연에도 김성기 김장섭 임춘길 소유진 백민정 등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기존 멤버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 배역 당 5명씩 캐스팅해 다양한 조합에서 오는 색다를 매력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합류한 홍록기 라이언의 연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작품의 명장면은 굳게 닫혀있던 피아노 뚜껑이 열리면서 형제가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피아노 합주다. 재즈 변주곡 형식으로 배우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해 매 공연 때마다 화제가 됐다. 홍록기는 “손목이 저리고 손가락이 아플 때까지 피아노 연습을 했다. 새벽 3시에 피아노 연습하는 꿈 때문에 깨어나기도 하고 정말 고생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가요 ‘세월이 가면’으로 유명한 최귀섭 예술감독의 곡들은 감성적인 멜로디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다시 들어도 어색하지 않다. 공연기획사 엠뮤지컬컴퍼니는 “결말에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 동욱 형제와 유미리가 부르는 ‘사랑’과 동욱의 생일을 축하하는 ‘즐거운 파티’는 이번 공연에서도 초연 때만큼 큰 박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극본도 쓰고 연출도 맡은 오은희 연출은 “시대에 따라서 관객의 취향이 변하는 것을 고려해 극 사이사이에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초연 때는 감동모드로 갔다. 관객들이 나갈 때 다 울었다. IMF(외환위기) 지나고는 우울한 내용보다는 코믹한 것을 가미해 감동과 웃음을 섞었다”고 말했다.

극 중간에 소녀시대의 ‘훗’과 아이유의 3단 고음 등을 패러디한 즉흥연기는 큰 웃음을 선사한다. 오 연출은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요즘에는 취직이 안돼 이벤트 회사에 들어갔는데 또 해고되는 유미리에게 관객들이 많은 공감을 하는 것 같다. 유미리 캐릭터는 135군데 이력서를 넣어서 떨어졌던 내 경험에서 나왔다”며 웃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