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머리를 한쪽으로 자주 기울일 때 뇌신경 결함에 의한 ‘마비성 사시’ 의심을”

입력 2011-03-06 17:19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진, 진단 가능한 고해상도 MRI기법 첫 고안

생후 27개월의 여아 지은이는 태어날 때부터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부모는 ‘선천성 사경(목 근육 이상으로 한쪽으로 기우는 증상)’이라 생각하고 갓 태어난 아이를 울려가며 물리치료를 받게 했다. 잘 한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1년이 넘도록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심한 감기가 폐렴으로 진행돼 찾은 대학병원에서 안과 검사를 받아 보길 권했고 뜻밖에 ‘마비성 사시(斜視)’ 진단을 받았다. 부모는 “그동안 물리치료를 한다고 아이에게 큰 고통을 준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지은이는 곧 사시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황정민 교수는 6일 “대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는 경우 목 근육이나 뼈 이상으로 오인해 재활의학과나 정형외과에서 엉뚱한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목 근육 치료나 수술까지 받는 사례도 종종 있다”면서 “평소 아이가 머리 기울임 증상을 보인다면 사시가 아닌지 한번쯤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시는 정면을 볼 때 한쪽 눈의 까만 눈동자는 가운데 있지만 반대편 눈동자는 눈의 안쪽(내사시) 혹은 바깥쪽(외사시)으로 돌아가 있는 증상을 말한다. 눈동자가 바깥쪽으로 몰린 외사시가 가장 많지만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는 마비성 사시도 적지 않다. 이는 안구 근육을 움직이는 뇌신경에 이상이 있을 때 생긴다.

황 교수는 “눈동자를 움직이는 6개의 근육은 3, 4, 6번 뇌신경이 조정하는데, 이 중 4번 뇌신경이 지배하는 상사근의 마비가 선천성 소아 사시의 가장 흔한 원인”이라면서 “이 경우 마비된 눈의 눈동자는 위로 올라가며 대부분의 환자에서 마비된 눈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게 되는 특징적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또 물체가 둘로 보이는 복시 현상, 좌우 안구 운동장애,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등이 동반된다. 아이들은 복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찡그리고 다니기도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런 뇌신경 결함에 의한 마비성 사시를 정확히 진단하는 방법이 없었다는 점. 특히 4번 뇌신경은 일반 MRI(자기공명영상촬영)를 통해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다. 때문에 선천성 마비사시의 원인이 상사근 마비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것이 4번 뇌신경 자체의 문제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분당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김재형 교수팀이 안과 황정민 교수와 함께 이런 미세한 4번 뇌신경을 정확히 식별하는 고해상도 MRI 영상 기법을 최초로 고안해 내 의료계 주목을 받고 있다.

김 교수팀은 최근 2년간 선천성 마비사시 환자 100명 이상에게 이 방법을 적용한 결과, 전체의 3분의 1가량에서 4번 뇌신경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4번 뇌신경의 굵기는 0.5㎜ 내외로, 1㎜ 내외 해상도를 갖는 기존 MRI 영상 기법으로는 이상 유무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는데 0.25㎜크기 까지 식별 가능하도록 수동 조작을 통해 MRI 해상도를 높임으로써 기존보다 4배 정도 더 자세히 정확하게 병변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이 연구결과를 최근 미국 신경영상의학회지와 미국안과학회 공식 학술지인 ‘안과학’에 발표했다. 마비성 사시로 인해 복시 현상이 나타나면 이를 줄이기 위해 한 눈을 가리거나 프리즘 안경으로 교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뇌신경 결함으로 인해 마비된 안(眼)근육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므로 주변 근육을 이식하는 수술이 필요하다. 단, 마비된 지 6개월 이내 급성기일 경우 보톡스 주사를 놔 교정하는 치료법이 근래들어 많이 시술되고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