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58) 박물관 기탁 추사 ‘세한도’
입력 2011-03-06 18:09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예술가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 중 최고 걸작을 꼽으라면 1844년 제주도 귀양살이 때 그린 ‘세한도’(歲寒圖·국보 180호)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로 69.2㎝, 세로 23㎝ 크기인 이 작품은 사제 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청나라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겨울에도 꿋꿋한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준 것이지요.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함으로써 극도의 절제미를 보여주고 있답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완당(阮堂)이라는 호를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습니다.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통해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한 것이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인화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상적은 세한도를 청나라에 가져가 학자 16명의 제영(題詠·제목을 붙여 쓴 시)을 받았답니다. 이후 이상적의 제자인 역관 김병선이 가지고 있던 세한도는 1930년쯤 일본인 후지쓰가가 구입해 44년 도쿄로 가져간 것을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1903∼81)이 설득해 그해에 다시 환수했다는군요. 후지쓰가는 48년에 숨지고 그의 집은 폭격을 맞았다니 세한도는 하마터면 재가 될 뻔했지요.
소전이 49년에 학자 정인보와 독립운동가 이시영 오세창 등의 발문을 받아 붙여 세한도는 총 길이 10m에 이르는 두루마리 대작으로 변했답니다. 하지만 정치로 재산을 탕진한 소전이 이를 고리대금업자에게 넘기고 빚을 갚지 못해 소유권을 포기했으며, 개성 출신의 손세기라는 사람이 사들여 그의 아들 창근씨가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장자 손씨가 얼마 전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했다는 소식입니다. 세한도가 외부 전시에 나온 적은 여러 번 있지만 공공기관에 기탁되기는 처음으로 기탁 기간은 2년이라고 합니다. 기탁이란 소유권 일체를 넘겨주는 기증과 달리 소유권은 여전히 소장자에게 있으며, 기탁 받은 기관은 전시 등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관과는 개념이 다르답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한 개인 소장 유물은 모두 436점으로 이 가운데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는 81점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국보로 지정돼 있는 기탁품은 세한도를 비롯해 조선시대 도자기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粉靑沙器彫花魚文扁甁·국보 178호),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마을에서 유래한 탈놀이 가면 ‘하회탈 및 병산탈’(국보 121호) 등이 있지요.
국립민속박물관이나 국립고궁박물관에도 기탁품은 다수 있습니다. 개인 소장 문화재는 자칫 잘못하면 관리 부실로 인해 훼손될 우려가 높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박물관 등 기관에 기탁하게 되면 개인 소장자는 보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수탁 기관에서는 다양한 기획전시를 꾸밀 수 있으며, 관람객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감상할 기회가 늘어나니 이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닐까요.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