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결혼해요” 퀸카 꿰찬 순진男… 영화 ‘사랑이 무서워’
입력 2011-03-04 17:28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에서도 임창정은 이번과 비슷한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그때는 톱스타를 사랑하던 평범한 야구 심판이었다. ‘색즉시공’(2002)에서는 퀸카를 사랑하는 늙은 대학생 역이었다. 외모도 배경도 별로지만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미인을 얻는 캐릭터는 임창정의 전매특허일까. 정우철 감독 신작 ‘사랑이 무서워’에선 홈쇼핑 회사의 톱 모델을 사랑하는 시식 모델이다.
걸어가기만 해도 모두의 눈길을 붙잡는 미모의 소유자이자 완판모델 소연(김규리)은 연인에게 차인 후 울적해하다 만만한 상열(임창정)을 불러내 술을 마신다. 술을 진탕 마시고 기억이 없어진 상열은 소연과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고 제멋대로 착각하고는 마침내 그녀와 결혼한다. 이쯤 되면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짝인 상열과의 결혼에 순순히 응한 퀸카의 의도가 수상할 법도 한데, 순진한 상열은 마냥 행복에 젖었다.
영화 초반부부터 일찌감치 밝혀지는 ‘평강공주’의 비밀은 다름 아닌 임신이다.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듯 혼전임신이라는 소재는 진지함은 없고 가볍게만 그려지는데, 공주에게 속은 바보 온달이 비밀을 알아채는 과정이 재미의 핵심이다. 도도하고 뻔뻔하면서도 얄밉지 않은 소연과 어리바리 못났지만 정이 가는 상열의 말도 안 되는 로맨스가 코믹하게 펼쳐진다. 안석환 강성진 등 조연들의 활약도 웃음에 한몫한다. 112분간 웃고 넘길 수 있는 킬링타임 정도의 영화를 원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코미디에서의 임창정의 능력은 ‘색즉시공’ 시리즈와 ‘위대한 유산’ 등을 통해 이미 검증됐다. 잘생기지도 지적이지도 않지만 순수하고 책임감 강한 노총각 역할은 이제 식은 죽 먹기인 모양이다.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품이 저보다 더 어울릴 수 있을까 싶다. ‘미인도’ 이후 3년 만에 복귀한 김규리(김민선에서 개명)의 연기도 무난하다. 15세가. 10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