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드림의교회 이상화 목사 목회 스토리] 현장목회 뛰어든 연합사역 일꾼 “도심 소통의 장 마련”
입력 2011-03-04 18:10
이상화(48) 목사는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해 실무를 담당해 온 대표적인 ‘기관 목사’다. 그는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사무총장, 한국교회연합을위한교단장협의회 사무국장 등을 맡아 크고 작은 연합 사업을 매끄럽게 처리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10월 ‘도심교회 목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서울 드림의교회 담임목사로서 현장에 뛰어들었다.
“주위의 첫 반응은 ‘너 정말 말하고 글 썼던 대로 목회 하는지 볼 거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전통적인 중대형 교회 몇 군데서 청빙이 있었어요. 하지만 본질적인 것보다 비본질적인 것을 두고 타협하다보면 ‘짧은 목회 인생 얼마나 힘들게 보낼까’ 하는 고민이 들더군요. 오히려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라 마음껏 사역할 수 있어 좋습니다. 상식과 균형으로 다양한 색깔을 맞추고 있습니다.”
명동에 위치한 ‘문학의집 서울’을 빌려 예배를 드린다. 평소에는 창경궁 근처 165㎡의 교회 사무실을 쓴다. 주로 카페로 활용되며, 수요일과 새벽에 예배 공간으로 바뀐다. 부임 초기 70명 수준이던 성도는 6개월 만에 170명으로 불었다.
“교회의 강점은 의사결정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입니다. 27명의 집사가 있는데 위원회에서 사업을 결정하면 그대로 예산이 집행됩니다. 교회 운영에 필요한 경상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사회적 책임을 위해 모두 외부로 흘려보냅니다. 한국교회는 시대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너무 낙후된 시스템을 고수하려 해요. 전통은 사실 성경적이라기보다 문화적 습성에 가까운데 말이죠. 무엇보다 도심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소통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렇다면 이 목사가 다양한 연합 사업과 ‘크리스채너티투데이 한국판’ 편집인, 한국소그룹목회연구원 대표 등을 감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엠마오 출판사에서 1990년부터 6년간 기획과 도서전산화 작업을 하면서 수많은 책을 섭렵했어요. 특히 사장님이 해외 기독교 서적의 트렌드를 파악해 오라며 매년 4∼5회 미국 출장을 적극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때 미국의 유명 출판사를 다니며 출판 흐름을 읽을 수 있었는데 필립 얀시를 한국에 최초로 소개했죠. 그곳에서 목회 트렌드와 경영기법을 배웠습니다.”
96년 ‘기독신문’의 박에스더 전 편집국장 추천으로 교갱협 일을 시작한 이 목사는 고 옥한흠 목사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었던 최측근 비서였다. “저는 참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옥 목사님 밑에서 진보와 보수 교회를 아우르며 많은 어르신을 모실 수 있었다는 것은 영광이자 특권이었습니다. 다수의 기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요.”
주일예배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수요일부턴 꼼짝도 안 한다는 이 목사는 “설교 때마다 ‘우리가 바로 살면 세상도 바뀌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교회갱신 운동 실무자 입장에서 보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떨까. “만약 옥 목사님이 살아계셨더라면 ‘너 지금 뭐하고 있냐! 더 강하게 개혁을 부르짖으라’고 재촉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십시오’라며 최악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통탄하셨을 것 같아요. 한국교회는 힘을 과시하면 할수록 욕을 얻어먹게 돼 있습니다. 매섭게 때려도 겸손하게 허허실실 전법으로 가야 해요.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하고요.”
글·사진=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