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象 달라져도 변치않는 ‘미인 욕망’… ‘예쁜 여자 만들기’

입력 2011-03-03 19:15


예쁜 여자 만들기/이영아/푸른역사

여성들은 대부분 실제보다도 자신이 못생기고 뚱뚱하고 늙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대한비만학회가 실시한 ‘비만에 대한 인식도 및 태도’ 조사결과는 외모에 관한 여성들의 왜곡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가 정상체중(18.5∼22.9)인 여성의 26%가 자신을 ‘비만’이라고 인식했고, 정상체중 여성의 52%는 ‘최근 1년간 체중감량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과도한 성형의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고, 무리한 다이어트로 건강을 잃은 사례들은 드물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날씬하고, 더 예쁘고, 더 섹시하기를 원한다. ‘미녀 거지’에서부터 ‘얼짱 교사’까지 우리 사회는 외모지상주의로 물들어있다.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는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고 진화하는 것일까. ‘예쁜 여자 만들기’는 외모에 대한 인식이 근대부터 지금까지 변해온 과정을 추적한다. ‘미인 강박증’에 관한 문화사 고찰기로도 읽힌다. 여성, 몸, 인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저자(이영아)는 여성들의 몸 가꾸기에 대한 강박을 한국 근대 여성의 문화사를 통해 성찰한다.

시대별 미인 변천사는 미인은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낸 산물임을 보여준다. 몸매는 요즘 미인의 중요한 조건으로 여겨지지만, 20세기 직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외모를 평가할 때 몸매보다는 얼굴을 봤다. 여성들의 한복은 가슴을 강하게 압박하고 치마는 되도록 부풀게 만든 형태였다. 이는 하복부를 강조한 ‘b’라인으로, 요즘 인기 있는 ‘S라인’과는 대조된다.

하지만 1930년대 서양 문물이 급격하게 들어오면서 ‘S라인’을 미의 표준으로 여기게 된다. 블라우스는 가슴과 어깨선을 강조하고, 스커트는 날씬하고 긴 다리를 드러낸다. 서양 의상이 확산될수록 여성들 사이에서는 긴 팔과 다리, 날씬한 허리가 돋보이는 서구형 체형에 대한 동경도 커졌다. 신문에는 여성들을 위한 몸 가꾸기 기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부위별 미용체조법, 몸매의 단점을 보완하는 패션, 몸에 맞는 옷을 설명하는 글들이 실렸다. 성형수술 광고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진 1940년대에는 아이를 잘 낳고 몸이 튼튼한 여성이 미인으로 여겨졌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는 ‘국군의 어머니’가 될 것을 바랐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미인의 상이 달라져도, 어느 시대건 미인을 선호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외모를 추구하고, 얼굴과 몸매를 평가하는 일이 잦아진다. 연예인 외모에 대한 품평은 근대에도 있었다. 다만 지금이 더욱 노골적이고 내용이 풍부할 따름이다.

1920년대 신문지상에 등장한 ‘언 파레드(On Parade)’ 기사는 여성 음악가나 무용가의 외모에 대한 세간의 평판을 솔직하게 적었다. ‘언 파레드’는 연극이 끝난 뒤 감사 인사를 위해 배우들이 무대 위에 일렬로 서는 행위인데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유명 인사들을 열거하며 품평하는 글의 제목으로 쓰였다.

유명인들도 품평에 가세했다. 소설가 현진건은 “첫째로 키가 조금 큰 듯하고 목선이 긴 여자가 좋다. 제 아무리 얼굴이 예쁘장하고 몸맵시가 어울려도 키가 땅에 가는 듯하고 목덜미가 달라붙은 여자는 보기만 해도 화증이 난다”면서 키 작은 여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은 근대보다는 현대 여성들이 더 강하게 느낀다. 과거에 미녀는 타고난 존재였다. 하지만 성형수술의 도입과 의복의 발달로 미모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됐다. 화장하지 않는 여성, 패션 센스가 없는 여성은 미인이 될 기회를 버린 것으로 간주받는다.

저자는 ‘예뻐지지 않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감에 공감한 듯하다. 그는 다이어트와 피부관리, 화장에 빠진 여성들에게 몸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으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모에 대한 관심은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식의 상투적인 결론을 내리지도 않는다.

저자는 외모의 가치를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여성들 모두가 ‘한 가지 형태’의 미녀가 되기위해 스트레스 받고 끙끙댈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미녀’의 정의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듯이,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것이라며 획일적인 외모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n개의 아름다움’을 만들자고 강조한다. 조선시대와 개화기 시대의 미녀들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 자료이 이채롭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