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동 김반장’의 꿈 “새터민은 시스템 밖의 사람들

입력 2011-03-04 23:04

휴일인 지난 1일 서울 A법률사무소의 비상근 과장인 김정미(34·가명)씨 휴대전화가 아침부터 울려댔다. “불법체류 신분이라는 거죠? 결혼하시려는 분이 새 사람인가요, 예전에 같이 살던 분인가요? … 아, 그런 거면 출입국관리소에서 위장이혼을 했던 거 아니냐고 따질 겁니다. … 아니요. 제가 그렇게 의심한다는 게 아니고요.” 전화를 끊은 김씨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이 사람, 몸통은 다 빼고 머리카락 한 가닥쯤만 얘기했어요. 그래도 나는 다 알아요. 경험으로, 느낌으로."

논현주공 14단지에 사는 김씨는 고향 양강도를 탈출해 2007년 임신 8개월 만삭의 몸으로 한국에 왔다. 탈북여성이자 미혼모. 중국을 떠돌다 북송돼 1년간 감옥 생활을 했고, 재탈북해 공안에 쫓겨 다닐 때는 건물 6층에서 떨어져 골반과 갈빗대가 죄다 나갔다. 살아난 건 천운이었다. “다 겪어봐서 안다”는 그녀의 말. 믿어도 좋았다.

법률사무소에는 남 도우려다가 취직했다. 남편에게 얻어맞는 동네 새터민 여성 문제를 상담하러 무작정 찾아간 법률사무소에서 일자리를 제안 받았다. 국제이혼, 호적정리 등 상담이 주 업무. 대부분은 새터민이다. 김씨는 탈북주민을 “법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쉽게 법에 호소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자기는 법 밖, 그러니까 시스템 밖의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살다 사고치고 뒤늦게 변호사와 경찰에 매달려봐야 답이 안 나오는 거죠. 겪어봤기 때문에 해줄 얘기가 있어요. 그들이 처한 상황이 뭔지,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때로 아주 모질게.”

비밀보장은 철칙이다. 상담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이름도, 고향도, 사는 곳도, 나이도. 아무 것도 안 물어본다. 내겐 그런 게 필요 없다.”

김씨는 야간 대학을 다니고, 인터넷 상담을 하고, 새터민 학생에게 공짜로 공부도 가르친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남동구 주민자치위원회 새터민 대표를 맡았다. 그녀가 하는 그 모든 일 중 가장 잘하는 것. 동네 새터민 고민상담이다. 수다와 심리치료가 절반씩 섞였다.

뭐든지 해결해 준다고 해서 ‘논현동 김반장’으로 불리는 김씨. 언젠가 새터민 엘리트를 모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꿈이다. 얼굴 내놓고 공개적으로.

인천=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