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자기희생으로 나보다 타인을 섬겨라… 바울에게 ‘한국 목회자의 갈 길’을 묻다
입력 2011-03-03 18:00
일부 목회자의 부적절한 처신이 마치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인 양 왜곡되고 있다. 이 땅의 10만 교역자들은 녹록지 않은 목회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데도 말이다. 목회자들이 어떻게 하면 교회 및 사회 속 희망의 등불로 다시 각인될 수 있을까. AD 1세기 당시 최고의 목회자, 신학자이자 선교사였던 사도 바울과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올바른 목회론, 지도자론 등을 들어보았다.
-예수 믿는 이들을 그렇게 박해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나요.
“허허, 처음부터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구먼. 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자가 메시아가 된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저주와 비참한 삶의 종말을 의미했기 때문이지(신 21:23).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임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세상의 화목이라는 걸 이해하게 됐네(갈 3:13, 고후 5:21).”
-성공한 목회자를 꿈꾸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혹자는 ‘3P(권력 Power, 명예 Prestige, 지위 Position)’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목회란 무엇입니까.
“내가 힘써 복음을 전하여 신자를 얻고 그곳에 교회를 세우면 그것으로 복음 사역이 끝난 게 아니었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지. 곳곳의 교회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겨났었지. 그때마다 난 직접 교회들을 순방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 내가 못 가면 내 동역자들을 보냈네. 목회란 그런 것이네. 난 오로지 하나님 중심 사역을 하려고 했네. 나보다 하나님과 교회 및 성도들을 먼저 생각했지. 그러다보니 마음속이 타들어가곤 했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고후 11:23∼27, 13장)를 보면 잘 나타나 있지. 목회자는 자신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받기 위해 신앙의 경주자로서 달음질을 잘하도록 격려해야 한다네. 목회자를 평가할 때도 오랜 기간 지켜봐주고 은사가 아닌 열매로 하기를 바라네.”
-바울 선생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삶의 통합을 말하고 실천하셨는데요. 목회자들이 각종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해결책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모범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지(딤전 3장). 사역자는 거짓 교훈을 경계하고(딤전 1:3∼11) 복음과 교회의 일꾼으로서 선한 교훈으로 양육 받고 경건을 연습해야 하네(딤전 4:6∼16). 자족과 경건의 생활도 해야지(딤전 6장). 예수님의 말씀과 경건의 교훈에 전념하지 않으면(딤전 6:3) 마음이 피폐해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결국 불필요한 다툼이 일어나게 되지. 목회자는 특히 돈의 유혹도 피하고(딤전 6:10)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해(엡 4:2∼3).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여기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건 낮아지는 능력,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지.”
-한국교회가 덕스럽지 못한 모습으로 인해 내부 갈등이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까요.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이야. 하지만 이 같은 부족함 속에도 함께 모여 하나님의 거룩성을 닮아가는 게 교회 아니겠는가. 난 빌립보 성도들에게 안팎의 문제, 특히 교회 내부 갈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겸손과 자기희생으로 하나 될 것을 주문했었네(빌 4장). 당시 헬라 문명에서 겸손은 노예의 윤리였지. 이 같은 밑바닥의 윤리를 받아들이라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네. 현재 교파 분열과 교단의 험악한 정치로 상처받은 한국 기독인들은 꼭 한번 되짚어보길 바라네.”
-바울 선생님에게 복음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전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것, 당연한 것이었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말씀의 숲에서 보면 복음 안에 십자가와 부활이 있고 복음과 고난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지(살전 2:2, 딤후 1:8, 2:9).”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 15:31)고 하실 정도로 늘 약한 것들과 능욕, 궁핍과 핍박과 곤란한 삶을 사셨으면서도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고 고백하셨으니까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빌 3:10)을 갈망하길 바라네(딤후 1:8, 2:3). 고난은 믿음의 학교라네.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어(롬 8:17∼18). 예수님을 깊이 알수록 그분을 더 닮고 싶어지지.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 위해 신성의 영광을 버리셨어(빌 2:5∼7, 히 2:5∼18).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엄청나게 값진 것이네. 어떠한 차별도 없지(롬 3:27∼28).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과도 같은 편지, 디모데후서를 남겼었지. 그 유언의 핵심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거였네. 즉,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으려 할 때만이 ‘고난과 영광’ ‘자발적 비움과 짊어짐’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