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철기 (4) 대입낙방 재수 통해 겸손과 끈기 배워

입력 2011-03-03 20:26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마침 외삼촌이 원주에서 서점을 운영하셔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곳으로 달려가 책을 읽거나 빌려 보았다. 푸르타르크 영웅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삼국지, 슈바이처 전기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앞으로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슈바이처와 같이 선교사로 봉사하겠다는 비전을 키웠다. 그와 같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어머님도 그런 뜻을 좋아하셨다. 그러나 나의 사춘기는 놀기에 바빴다. 역사와 국어는 좋아했으나 수학 성적은 날로 떨어졌다. 학교에서는 그래도 서울대 의대에 입학원서를 써주었다. 결과는 나를 포함해 많은 동급생이 입시에 실패하였다. 수학이 문제였다.

처음 맛본 인생의 실패였다. 소위 명문 입시학원에도 응시했으나 또 떨어졌다. 나는 철저히 부서졌다. 이후 다른 학원을 찾아 맨 앞자리에 앉아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각오로 시작했고 수학 실력도 조금씩 향상됐다. 배움에 성실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가운데 나의 미래는 의사보다 역사학과 신학을 겸비한 쪽이 아닌가 싶었다. 결국 한국의 토인비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해 입시에서는 서울대 사학과에 합격했다. 그리고 졸업 후 신학대학에 갈 생각으로 종교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동숭동 낭만 시절 2년 만인 1967년 군에 입대했다. 곧 이어 청와대 테러 침투 사건과 울진·삼척 공비 사건이 터졌고 이 바람에 훈련 강도가 심해졌다. 복무기간도 36개월로 늘어났다. 그 무렵 목 뒤 종기를 치료하려다 무심코 부대 의무병에게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가 쇼크가 일어나 죽을 뻔한 적도 있다. 군의관도 없을 때라 민간 병원에 택시로 실려가 5시간 동안 치료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절제 없던 생활에 대한 징계가 아니었는지 싶다. 군에서 사회적 경험을 겪으며 앙드레 말로와 카뮈, 베르그송 등의 영향을 받으며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행동하는 지성인은 외교관과 연결됐다. 만주를 누비며 통일을 위해 뛰는 모습을 그렸다. 유엔을 통한 세계평화 기여의 꿈도 그렸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셨다. 어머니는 기도해보자고 하신 후 기도 응답을 말씀하셨다. 아들에게 주신 비전이 다른 것 같고 외국을 많이 다니게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복학 후 역사 공부는 게을리 하고 고시 공부에 열중하면서 교수님의 꾸지람도 들었다. 갑작스런 진로 전환이라 물어볼 선배도 부족해 나름대로 준비해나갔다. 72년 시험을 앞둔 마지막 두 달은 낙산의 고시연구원에 들어가 매일 연탄가스를 마시며 공부했다. 시험 당일 첫 번 문제를 대할 때 눈앞이 캄캄했으나 끈기로 끝까지 버텼다. 시험 때 매 시간 기도드렸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보니 첫 시간 성적이 제일 나빴고 점차 좋아졌다.

얼마 후 친구가 찾아와 시험에 합격한 것을 알려주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날아갈 것 같았다.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셨다. 그해 8월부터 나의 외교관 생활은 시작됐다. 대학입시 실패가 나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었고, 성실하면 보답이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 군 생활은 참을성을 길러 주었다. 좋은 이상을 품으면 바람직한 열매를 맺는다. 인생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께서 늘 새로운 길, 회복의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이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