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내우외환] 韓銀 ‘실기’·정부의 성장주의가 ‘물가 충격’ 불 지펴
입력 2011-03-02 21:42
소비자 물가가 4% 중반대까지 치솟으면서 당국의 정책 실기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 가계부채와 과도하게 풀린 재정자금 등 거품 제거에 나서야 했으나 이를 미루면서 정책대안이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리 정상화에 소극적인 김중수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성장우선주의에 ‘올인’하고 간섭을 통해 한은의 금리 인상을 저지해 온 정부의 잘못도 그에 못지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이후 원자재가 상승 등에 따른 조기 경기둔화와 물가 급등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하강속 물가상승) 현실화, 나아가 시한폭탄인 가계부채로 인한 경제 위기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이번 물가 급등의 가장 큰 책임은 금리 정책을 담당하는 한은에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은은 지난해 4월 김중수 총재가 부임한 이후 금리인상 타이밍을 매번 놓치면서 인플레 기대심리를 고조시켰다. 한은의 실기는 청와대와 정부 눈치에 민감한 김 총재의 행보와 직결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 총재는 지난해 7월 금리를 올리면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계속 시사했지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 추진(8월) 등을 고려해 잇따라 금리를 동결했다. 지난해 10월 물가가 4.1%나 오르자 11월에 부랴부랴 금리를 올렸지만 선제적 대응과는 한참 먼 조치였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한은 금통위 열석발언권을 통해 금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경제의 안정적 운영이 급선무인 상황에서 5% 성장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정책대응 실기에 따른 악영향이다. 최근의 물가급등세가 성장에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져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물가상승기로 접어들면 소비위축과 기업 수익악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금리수단을 함부로 쓰기가 어려워진다”며 “금리인상 타이밍을 놓치면서 정책운용의 여지가 너무 좁아졌다”고 토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지난해 시작한 경기상승기가 물가급등으로 인해 올해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며 “금리정상화를 미룬 결과, 가계부채의 폭발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는 위험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