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선교통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입력 2011-03-02 18:03


유럽의 변방 발칸반도. ‘세계의 화약고’ 뇌관 역할을 해온 알바니아계 민족의 본산지 알바니아. 가보기도 어렵지만 이르는 길 자체도 고생스러웠다. 이곳에서 13년째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조태균 선교사는 나와 같은 공군기지에서 근무한 군대 고참이었다. 머나먼 땅, 이미지가 안 좋은 이 나라에 파송됐는지 궁금하던 차, 인근 마케도니아 출장을 마친 뒤 선교사를 찾았다.

마침 내가 수도 티라나에 도착한 날은 유럽 어디를 가나 천대받던 알바니아 사람에 대한 유럽 본토 내 비자가 면제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알바니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범죄조직=알바니아계’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이 나라에 새 세상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시민들 표정은 밝았다. 여느 유럽 도시와 다를 바 없이 거리도 활기찼다.

발칸반도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 하에 놓였던 15세기. 가장 먼저 이슬람화(化)돼 포교의 전령 역할을 했던 알바니아 민족의 본거지에서의 선교가 위험하지 않을까. 늘 조 선교사와 가족의 안위가 걱정됐었다.

그러나 엔베르 호자의 독재기간(1941∼85) 동안 종교행위를 금지하는 바람에 알바니아는 사실상 무신론 국가가 됐다. 오히려 더 좋은 선교 환경이 제공된 셈이다. 호자의 독재가 무너진 뒤 알바니아에는 종교의 자유가 복원되어 이슬람교, 정교회, 가톨릭이 3대 종교로 인정받게 되었다. 최근 들어 개신교 선교사들의 헌신적 사역이 좋은 평판을 얻어 개신교도 4대 종교가 됐다.

조 선교사는 지난 13년간 어린이를 위한 교육사역에 집중해 현지인의 좋은 이웃이 됐다. 하지만 생활은 쉽지 않아 보였다. 평생 동역자인 부인, 두 딸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그의 집은 티라나의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집에 들어서자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었다.

온돌문화에서 살던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이 냉랭한 가옥환경이 아닐까. 최근에야 설치한 난로 하나에 온 가족이 의지해 기나긴 겨울을 날 수밖에 없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집안에서도 두툼한 점퍼를 껴입고 살아야 하지만 미소를 잃지 않는 선교사와 가족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모든 것을 퍼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장 필요한 걸 물었더니 말없이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 싶어 캐물었다. 그러자 부인이 상자 하나를 주섬주섬 열어 보였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국의 한 기도원에서 보내준다는 선물상자였다. 부부는 “가장 기다려지는 선물”이라며 입을 모았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다이어리의 첫 장을 펼치자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엔 후원한 성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도 다이어리 한 권과 함께 전달되는 수세미, 세제, 속옷과 라면 몇 봉지는 이들에게 단순한 물품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큰 사랑과 위로를 경험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이 기도원은 해마다 성도 1명이 후원물품을 상자에 담아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전달한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물품 하나하나에서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느꼈다. 그리 비싼 물품이 아니지만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큰 사랑을 선교현장에 전달하는 이런 숨은 기도자. 그들이 있기에 조 선교사 가족은 오지에서도 힘차게 사역을 계속하며 세 번째 교회 개척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서태원 유로코트레이드앤트래블 대표, 서울 이문동 동안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