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박문요의 LG배 우승

입력 2011-03-02 17:28


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3번기가 지난달 21일부터 서울 광화문 중화회(中華匯)에서 펼쳐졌다. 8강에 올랐던 이창호, 최철한, 안조영 9단 등 한국기사들이 전원 탈락하면서 중국의 잔치가 된 4강전에서 전대회 우승자인 콩지에 9단과 조선족 기사 박문요 9단(중국명 파오원야오·23·당시 5단이었으나 우승과 동시에 9단으로 승단)이 각각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앙꼬 없는 찐빵’처럼 한국기사가 없는 세계대회 결승전이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지만 팬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콩지에는 후지쯔배와 TV바둑 아시아선수권전 우승으로 상승세를 타며 중국 랭킹 1위에 오른 최강이었다(현재는 3위로 밀려났다). 반면 박문요는 당시 중국랭킹 12위로 세계대회 우승 경험도 없어 콩지에의 승리가 예상됐었다.

21일 결승 1국은 조용하게 시작됐다. 상대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탐색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조급한 사람은 먼저 허점을 보이는 법. 콩지에 9단이 휘청하며 순식간에 승부가 결정됐다. 박문요 9단이 123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자 대국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박문요 5단의 세계대회 첫 우승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박문요는 1988년 4월 15일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에 처음 바둑을 접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하얼빈시 바둑구락부 훈련반에 들어갔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프로기사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아들을 데리고 베이징으로 건너온다. 하지만 이듬해 아버지는 노상에서 강도를 만나 흉기에 찔려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중국기원 근처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아들의 바둑공부를 뒷바라지했다. 힘겨운 유년시절을 견뎌낸 박문요는 드디어 99년 프로기사가 되었다. 그 후 조선족 기사로 알려지면서 한국의 바둑 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03년 중국 을조리그에 참가했던 조훈현 9단은 박문요의 사정을 알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박문요는 2005년 LG배 4강과 삼성화재배 16강에 오르며 세계정상급 대열에 합류했다. 폭발적이기 보다는 차곡차곡 한걸음씩 내딛었다. 2008년 도요타덴소배에서 처음 국제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2011년 LG배에서 마침내 세계대회 우승에 바짝 다가섰다.

드디어 23일 운명의 2국이 시작됐다. 이번엔 시작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힘과 힘의 대결이 펼쳐졌고 7시간 가까이 걸린 긴 승부 끝에 박문요가 승리해 우승컵을 차지했다. 프로 입문 12년 만에 당당히 세계 정상에 올라 부모와 자신의 꿈을 이뤘고, 자신을 응원해 준 모든 이들에게 보답한 것이다. “우승상금(2억5000만원), 어머니께 모두 가져다 드릴 겁니다.” 행복한 박문요 9단이다.

김효정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