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한상률과 안원구

입력 2011-03-02 19:43


“한 전 청장 의혹을 푸는 길은 안 전 국장 연관 사안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이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돌연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2년여 전 황망하게 떠나더니 바람처럼 휙 돌아왔다. 그가 왜 떠났는지, 또 왜 이 시점에 귀국했는지, 그 정황을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획 출국’과 ‘기획 입국’이라는 말이 떠도는 것도 그런 연유다. 그를 떠올리면 연관검색어처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이다. 그는 한 전 청장의 대척점에 있다. 이 둘은 묘하게 얽히고 설켰다. 한때는 권력을 나누고 지키던 사이였으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의 등장인물처럼 등을 돌리더니 서로 비수를 꽂았다. 안 전 국장은 지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현재 수감돼 있다. 서울국세청 조사국장 직위를 이용해 부인이 운영하던 화랑의 그림을 강매했다는 혐의로 기소됐으나 그 부분은 무죄 판결이 났다.

한 전 청장을 둘러싼 의혹 가운데 안 전 국장과 관련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안 전 국장에게 차장 자리를 제의하면서 3억원을 요구했다는 주장,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기획세무조사였는지 여부, 2007년 대선 때 크게 논란이 됐던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를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실재했었는지 등이다. 이 사안들은 두 사람의 애증(愛憎)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것일 뿐더러 ‘한상률 의혹’ 가운데서도 핵심 중의 핵심이다. 검찰이 현재 가장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는 전군표 당시 청장에 대한 인사청탁용 그림 상납 의혹은 본질이 아니다.

우선 ‘차장 제의, 3억원 요구’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양측의 주장이 워낙 상반되기 때문에 진위 확인이 쉽지 않다. 다만 정황을 통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2008년 초 당시 국세청에는 뜬금없이 ‘안원구 대구청장의 본청 차장설’이 파다하게 퍼졌다. 나이가 많은 행정고시 기수 선배들을 제치고 지방청장에 임명된 것 자체가 파격이었는데 또 다시 차장으로 영전한다는 것은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처음에는 믿는 사람이 없었으나 갈수록 ‘안원구 차장설’에 무게가 실렸다. ‘뒤를 누가 봐준다더라’는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들렸다. 그러나 결과는 180도 달랐다. 안 전 국장은 두 단계 정도 강등된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좌천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웅성거림으로 국세청이 또 다시 술렁였다.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관련해서는 한 전 청장이 태광의 주요 사업지였던 베트남 현지 법인에 대한 세무조사 협조를 안 전 국장에게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베트남에서 국빈대우를 받는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 현지 법인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국제조세관을 역임한 안 전 국장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후 안 전 국장은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했고, 방한한 베트남 국세청장을 수행하면서 직접 접대하기도 했다.

국세청장이 연 매출 3000억원, 2007년 재계순위 620위에 불과한 태광실업 정도 회사의 세무조사에 이렇게 ‘구체적’ 관심을 갖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국세청장 하명 사안이나 검찰 고발을 전제로 하는 심층조사를 맡는 서울국세청 조사 4국이 조사를 담당했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안 전 국장이 대선 당시 문제가 됐던 도곡동 땅이 이명박 대통령 소유라는 것을 입증하는 문서를 포스코 세무조사 과정에서 발견하자 한 전 청장이 이를 덮었다는 의혹도 밝혀져야 한다. 안 전 국장은 이 사건으로 한 전 청장이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결국 비리 혐의로 쫓겨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공은 검찰에 넘어갔다. 검찰은 두 사람을 대질키로 했다고 한다. 한때는 서로의 자리를 지켜주며 영달을 빌어주던 사람들이 이제 얼굴을 붉히는 자리에서 만나게 됐다. 두 사람에 얽힌 사안들은 모두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권에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다. 누군지 짐작되는 권력실세가 등장하고, 전·현직 대통령까지 거론된다. 검찰의 행보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 초봄, 국세청 발 ‘의혹’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