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생체실험

입력 2011-03-02 17:40

생체실험이라고 하면 ‘현대적’ 개념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생체실험의 문학적 형상화는 역사가 깊다. 신들이 만든 반인반수(半人半獸)가 등장하는 그리스신화류는 차치하자. ‘과학적’ 생체실험의 문학적 효시라 할 수 있는 작품은 일찍이 1896년에 나왔다. H G 웰스의 ‘닥터 모로의 섬’.

주인공 모로 박사는 남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잔혹한 생체실험을 통해 동물들을 인간으로 개조한다. 그리고 이 짐승인간들 사이에서 신처럼 군림한다. 하지만 다시 동물로 퇴화하는 자신의 피조물들에 의해 파멸한다.

이 모로 박사가 20세기에 현실로 되살아난 게 아리베르트 하임과 이시이 시로다. 아니 그보다 더 극악하다. 모로 박사는 동물을 대상으로 했건만 각각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의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이들의 실험 대상은 사람이었다.

‘죽음의 의사’라는 별명이 붙은 하임은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주로 유대인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마취하지 않고 신체를 절단하는가 하면 심장에 독극물을 주사하고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등의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또 이시이는 세균전부대인 이른바 731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수많은 중국·조선인을 대상으로 생체 해부, 신체 훼손 등 잔학한 인체실험을 지휘했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사람이 아닌 통나무라는 뜻으로 ‘마루타’라 불렀다.

이처럼 생체실험이라면 선뜻 머리에 떠오르는 게 2차대전 당시의 ‘제3제국’과 ‘일본제국’이지만 이 두 나라와 대적해 싸웠던 ‘또 다른 제국’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싸우면서 닮는다던가. 미국 군의관과 주립병원 의사들이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교도소 재소자와 정신지체장애인을 대상으로 병원균 투입 등 생체실험을 실시했다고 엊그제 AP통신이 보도했다.

하긴 미국의 생체실험 얘기는 새롭지 않다. 역시 40년대 과테말라에서 교도소 수감자 및 정신병원 수용자들에게 각종 성병균을 감염시키는 생체실험을 했음이 드러나 지난해 10월 과테말라 정부에 공식 사과했다. 또 6·25 때도 중공군과 북한군을 상대로 세균전 실험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있다(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 스티븐 앤디콧 외).

불행한 것은 독일도, 일본도, 그리고 미국도 생체실험이 성행했던 때 의약산업이 크게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과학(의학)의 발전을 위해’라는 미명 아래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생체실험이 없어지는 날이 오기는 올까 걱정스럽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