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6초에 1명

입력 2011-03-02 17:38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국경을 맞댄 짐바브웨는 살인적 물가와 가난에 시달리는 나라다. 실업률은 80%(2005년 기준)에 이르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74달러(2009년 기준)에 그친다. 2008년 한 해 동안 물가는 12억%나 뛰었다. 수도 하라레 서부의 빈민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밥을 굶는 게 일상이다. 멜리사도 그랬다. 아버지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죽고, 어머니는 에이즈에 걸려 시골로 요양을 갔다. 방치된 멜리사 자매는 소금만 넣은 옥수수 죽으로 하루를 겨우 버텼다. 꿈이나 희망은 사치였다. 그저 굶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 2008년 12월 유니세프 짐바브웨사무소에서 멜리사를 발견했을 때 여섯 살 아이의 몸무게는 겨우 10㎏에 불과했다.

세계 곳곳에서 또 다른 멜리사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해 10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기아(飢餓)에 시달리는 인구는 9억2500만명에 이른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하루 에너지 섭취량 1800㎉조차 채우지 못한다. 또 6초에 어린이 1명씩 굶주림 때문에 생긴 질병으로 숨진다. 우리가 밥을 먹는 30분 동안 어린이 300명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죽는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굶주림의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한파·가뭄·홍수에다 잦은 전쟁으로 생산량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값이 오른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미국 농무부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세계 곡물 수급 전망은 의외의 결과를 보여준다. 양곡연도를 기준으로 지난해(2009년 11월∼2010년 10월) 세계 전체 곡물 생산량은 22억2900만t이었다. 공급량은 전년도 재고까지 포함해 26억8000만t, 소비량은 21억5900만t으로 4억8900만t이 남았다. 올해(2010년 11월∼2011년 10월) 전망치도 비슷하다. 작황이 나빠 생산량은 21억8200만t으로 조금 줄지만 공급량(26억7200만t)은 소비량(22억4000만t)을 4억t 이상 웃돌 것으로 예측됐다.

식량이 남아도는데도 아이들이 기아로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부조리의 이면에는 ‘악순환의 사슬’이 있다. 식량 분배의 불균형, 기후변화를 불러온 인간의 탐욕, 선진국이 저개발 국가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체계적인 농업파괴가 그것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자국 농민에 막대한 생산·수출 보조금을 주고 있다. 그 결과 육류, 우유, 감자, 곡물 등이 과잉 생산된다. 과잉 생산된 상품들은 싼 가격으로 저개발 국가에 수출된다. 그리고 덤핑정책은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아프리카 각국의 시장에서 주부들은 유럽과 미국 등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 곡물을 같은 질의 아프리카 농산물보다 50∼70% 싸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농가에서는 온 가족이 하루 종일 일해도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한다. 시장에서 파는 값싼 식량은 ‘그림의 떡’이다. 경제적 가치와 생산성이 떨어져 농업은 뒷전이 된다. 부족한 식량은 해외원조나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 이렇게 그들의 농업은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다. 여기에 거대한 규모의 투기자본은 결정타를 먹인다. 조금이라도 이윤을 더 내기 위해 실제 수요보다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급을 줄이기도 한다.

‘고리’를 끊을 해결책은 세계식량계획(WFP)이 우간다에서 하고 있는 ‘실험’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해 4월부터 WFP는 식량 원조 대신 더 많은 농작물을 기르도록 돕고, 농산물 시장을 키우고 있다. 이 사업으로 우간다 사람이 최소한 하루에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우간다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는 실마리가 ‘사람’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펴냈던 장 지글러 전(前)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