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수회담에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입력 2011-03-02 17:37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통부재’와 ‘상호불신’이다. 최고 정치 지도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 간 불통과 불신은 도를 넘어 심각한 수준이다. 어쩌다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 됐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이 대통령이 지난 2월 1일 신년 좌담에 이어 3·1절 기념식장에서 손 대표에게 청와대 회동을 제의했다. 한 달 전에도 그랬듯이 양측은 서로 말꼬리 잡기를 하며 진정으로 대화를 할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이 기대했던 영수회담은 또다시 물 건너 간 느낌이다.
손 대표는 2일 ‘민간인 사찰’ 문제 등 이 대통령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이 조건들이 받아들여져야만 만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청와대 제의에 진정성이 없고 예의도 없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청와대 회동은 정치적 흥정 대상이 아니며 정략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으면서 “누가 예의가 없는지 묻고 싶다”고 맞받았다.
청와대와 민주당 간 말싸움, 감정충돌이 점입가경이고 목불인견이다. 동맥경화가 돼 신체에 피가 돌지 않으면 이로 인해 큰 병이 난다. 정치 지도자 간 대화가 이렇듯 단절되고 상호 불신이 깊은데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역대 영수회담을 횟수로 보면 김영삼 대통령 시절 10회, 김대중 대통령 시절 7회, 노무현 대통령 시절 4회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9월 당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단 한 차례 회동을 했을 뿐이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여야 지도자가 서로를 외면했다는 것은 직무유기다.
이 대통령과 손 대표는 즉각 청와대 회동을 가져야 한다. 두 지도자가 만나 민생을 챙기고 나라를 걱정하는 데 무슨 복잡한 절차가 요구되며 자존심이 필요한지 묻고 싶다. 물가 폭등, 전세난 등 경제문제, 구제역 파동, 북한 핵위협 등으로 온 국민의 살림살이가 말이 아닌데 상대의 진정성과 예의, 선(先)사과를 언급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이 시점에 누구 책임이 더 큰가 경중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대통령은 다시 정중하게 영수회담을 제의하고 손 대표는 조건 없이 회동에 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