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문제는 정부야!
입력 2011-02-28 17:51
이 녀석은 몸값이 오르는 걸 좋아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어서다. 근데 최근 몇 년간 몸값이 떨어지거나 횡보를 거듭해 왔다. 지금은 조금씩 꿈틀대고 있지만 사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안갯속이다. 그때가 호시절이었다. 참여정부 후반기인 2006년 투기 광풍(狂風)이 불었을 때다. 강남을 시작으로 회오리가 일더니 서울 전역을 비롯해 전국이 요동쳤다.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중대형의 경우 자고나면 1억원씩 오른다는 전설적인 얘기도 회자됐다. 서민들은 탄식했다.
집권 막바지에야 비로소 이 녀석의 천적을 사방으로 풀었지만 실기했다. 그 천적이 뭔고 하니 바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강화였다. 개인 소득 규모를 따져 주택담보대출한도를 제한하는 강력한 유동성 규제 대책을 수도권 투기과열지구로 확대한 것이다. 2006년 11·15 대책과 2007년 1·11 대책으로 몸값은 잡혔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효과적 정책 수단을 너무 늦게 투입함으로써 일시적인 부동산 가격 폭등을 조기에 막지 못한 것은 실로 뼈아픈 실책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운명이다’).
DTI 규제 완화가 전세대책?
이 녀석은 이명박 정부 들어 큰 타격을 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하락하다 저금리와 경기 부양 정책 등으로 살아나나 했더니 보금자리주택 정책 때문에 다시 비틀댔다. ‘반값 아파트’ 공약이 낳은 보금자리주택 건설 계획은 최대 복병이었다. 2009년 하반기 시범 지구 실시 이후 지난해 본격 시행된 보금자리주택으로 거래 부진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녀석은 주택거래 침체 장기화를 내세우며 권토중래를 꿈꿨다. 부활 징조는 8·29 대책. 전임 정부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천적 DTI를 한시적이나마 잡아두도록 한 것이다.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매매 활성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래는 조금씩 살아나고 이 녀석의 몸값도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1월 말에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역대 최고가의 97%선(평당 평균 1793만원)까지 회복했다는 부동산 업체의 조사 결과가 나왔을 정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심각한 조짐을 보였던 전셋값도 치솟았다. 서민들의 아우성 속에 전문가들은 전세대란 원인을 집중 분석했다. 보금자리주택 등 저가 공급 대기수요, 재건축·재개발에 따른 멸실주택 증가, 전세물량의 월세 또는 보증부 월세(반전세) 전환 등이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 게 주 원인이다. 이런 현상을 예견하지 못하고 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대폭 줄여왔으니.
그럼에도 주무 부처인 국토해양부는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정부의 무능과 무지, 무책임을 탓해야 하는 건지…. 처방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전세대책으로 엉뚱한 걸 궁리하고 있다. 3월 말 종료되는 DTI 규제 완화를 연장해 매매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주택자들이 집 사는 걸 보류하고 있으니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바꾸려면 이 처방전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빚내서 집을 사라는 얘긴가.
집값 띄우기 시그널 될 수도
물론 거시건전성을 중시하는 금융위원회는 반대 의견이 강하다. 이미 시한폭탄이 돼버린 가계부채의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8·29 대책 이후 급증세를 보였다. 위험 수위다. 앞으로 인플레를 막기 위해 금리 인상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DTI 완화 연장을 전세대책에 갖다 붙이는 건 부적절하다. 한쪽은 유동성을 죄는 마당에 다른 한쪽에서 푸는 건 정책의 엇박자이기도 하다.
자칫 정부가 집값을 띄운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다음 주에 나올 2월 시장 동향을 보고 정부가 결정하겠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다른 해법을 강구할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녀석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2월 몸값도 오름세를 타고 있는데. 그나저나 이 녀석은 누구냐고. 물어보나마나지.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