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종회] 도쿄의 한국 장터
입력 2011-02-28 17:53
“신주쿠 ‘한국광장’ 대표의 진실한 삶에서 한·일 두 나라의 미래를 본다”
이태 전의 일이다. 서울의 일본 대사관저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일본 유학생 교육에 대한 공로를 표창하는 행사가 있었다. 일본 외무대신의 이름으로 주는 표창장을 받고 감사 인사말을 하는 자리에서 필자는 어쩔 수 없이 한·일 관계와 과거사를 언급했다.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말만 할 수 있었으나, 일본 대사와 그 직원들이 함께하는 공식 행사인데 한국의 인문학자가 아무런 그루터기의 표현도 없이 넘어가기는 양심상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잠시 어색하고 숙연한 순간이 있었으나 곧 상황이 회복되었고 유학생 교류 확대와 내실을 기할 수 있는 방안도 더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이 짧은 불편의 감수는, 두 나라 역사의 수면 아래 잠복해 있는 과거의 비극을 누구도 쉽게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의 발현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 화해와 용서는 사태를 외면하거나 덮어두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정확히 알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러 부분에서 일본을 넘어서려는 목표는, 단순한 분노를 애국심으로 포장하는 국수주의를 버리고 일본에 대한 성실한 연구와 올바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도쿄 부도심이라 불리는 신주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일본 최대 한국식품점 ‘한국광장’이 있다. 우리말로 ‘장터’라는 상호가 병기되어 있는 간판 안쪽으로 150평에 달하는 매장은, 서울의 대형마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없는 것이 없어 보인다. 연중무휴로 24시간 영업하는데 언제나 손님들로 넘친다.
이제는 손님 가운데 일본인 수가 한국인을 압도하고 있고, 어느덧 한국광장이 있는 신오쿠보는 도쿄의 한국문화 발신지가 되었다. 외국에서 성공한 슈퍼마켓 개념을 넘어서 한국 이미지를 대표하고 2002년 월드컵 이후의 강력한 한류와 지역 일대의 한인타운 형성에 중추적 역할을 해온 까닭에서이다.
이 신화와 같은 현실의 중심에 한 인물이 있다. 김근희 사장이다. 그는 ‘주식회사 한국광장’의 대표이며, 신주쿠 신오쿠보 일대에 여러 개 그룹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서적과 음반, 한국요리, 전통공예품, 전통차, 길거리 분식까지 판매하면서 그 값비싼 땅 곳곳에 한국어 이름을 내걸었다. 그와 함께하는 직원도 벌써 200명을 훌쩍 넘어섰다.
20여년 전 맨손으로 현해탄을 건너가 성공한 사업가가 된 그의 이력과 사례를 상찬하는 것은, 여기서 필자의 의도가 아니다. 참으로 눈여겨 볼 핵심은, 그의 성공이 확고한 문제의식과 올곧은 가치관으로부터 시발되었다는 데 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한·일 양국이 발전적 우호관계를 맺는 것을 자신의 테마로 결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먹거리·말·놀이·일의 4가지 생활문화를 공유하는 한국의 옛 시장 ‘장터’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팔리는 물건보다 팔아야 할 것을 판다는, 다소 비경제적으로 보이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그의 꿈은 가파른 산마루를 향하는 오르막길에 있다. 1986년 역사학을 공부하러 가난한 유학 가방을 들고 도쿄에 발을 디뎠던 그가 사업가로 변신하는 동안, 말 못할 난관을 돌파해 왔음은 불문가지다. 처음 도쿄 닛포리에 문을 열었던 작은 매장에서 지금 신오쿠보 한인타운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배타적인 일본의 사회제도를 넘을 수 있었던 힘은 정확한 판단과 변함없는 신념이었다. 한·일 양국의 앞날에 실질적인 우호의 교량이 되기를 원하는 프로젝트들이, 일본 상품시장에서 방향을 발견하고 방법을 찾은 수범 사례로 적용되어야 할 곳은 매우 많아 보인다.
3·1절 제92주년을 맞고 또 보내면서 임정시절에 제작된 영문 화보집이 공개되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176명을 포상하는 등 여러 행사들이 줄지어 있으나, 정작 아픈 역사의 상처를 생산적인 미래의 교훈으로 전환하는 의지와 효율성은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때, 한 재외국민이 걸어온 진실한 삶의 범례에 그 해답의 시사점이 숨어 있는 것 같아 그를 여기에 불러온 터이다.
김종회(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