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용병의 두 얼굴

입력 2011-02-28 17:52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가이드가 꼭 안내하는 곳이 있다. 바티칸시국의 성베드로대성당. 유럽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성당이란다. 이곳을 둘러본 가이드는 스위스 근위대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는다. “외세가 침입했을 때 목숨 걸고 교황을 지켜낸 충직한 부대였죠. 근위대는 지금도 교황청 수비를 전담하고 있어요.”

‘히말라야 눈 사나이들’로 불리는 구르카는 영국이 자랑하는 특수부대. 네팔인으로 구성된 이들은 제1, 2차 세계대전 때 용맹을 떨쳤고, 한국전에도 참전했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3만5000회 이상의 전투에 참가했다.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용병들이 명멸했지만 이들 3개 부대는 아직도 위용을 자랑한다. 특히 침략군에 맞선 스위스 근위대와 구르카는 불의한 전투에 뛰어든 용병과는 큰 차이가 있다.

현대에 들어와 용병의 활용가치가 높아진 것은 베트남전쟁. 미국은 작전 중에 붙잡혀도 정규군이 아니라고 잡아뗄 수 있는 용병을 고용했다. 소련 해체로 탈냉전시대를 맞은 미국은 정규군 감축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참업무 등을 민간인에게 위탁했다. 이들도 일종의 용병이다.

용병 시장은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1세기 전쟁산업과 용병의 실체를 파헤친 로버트 영 펠튼은 저서 ‘용병’에서 이라크전쟁을 전후해 민간 보안회사가 급증했다고 말한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2003년 이라크에 진출한 민간 보안회사는 60여개였고, 용병은 2만5000명에 달한다. 미등록 용병은 포함되지 않은 규모다. 용병 중에는 제멋대로 ‘살인면허’를 쓰는 이들도 있었다. 이라크전쟁 때 미군 업무가 민간에 넘어간 비율이 걸프전쟁 때보다 5배가량 늘었다는 보고서도 있다. 빅3 민간 보안회사 가운데 하나인 블랙워터는 2800만㎡에 달하는 훈련장에서 전문 용병을 양성한다.

미군이 용병을 선호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필요할 때만 쓰는 용병은 정규군보다 유지비가 덜 든다. 미군이 군사력을 남용하면 국제문제를 야기하지만 용병은 해고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경제·정치적 이유로 용병 시장은 팽창을 거듭했다.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와 측근들의 학정에 항거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용병들이 준동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이들은 부녀자와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살육전을 벌이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카다피 일당은 물론 학살을 서슴지 않는 용병도 준엄하게 심판해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