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철기 (1) ‘공의가 마르지 않는’ 세상 위해 인생 2막
입력 2011-02-28 19:11
청운의 꿈을 품고 시작했던 외교관 공직생활을 마친 것은 2006년 말이다. 그해 12월까지 한국·프랑스 수교 120주년의 마지막 문화행사를 주재하고 귀국한 지 4일 만에 퇴임식을 가졌다. 참석한 동료와 후배들 앞에서 34년간의 공직생활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외교관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근무해 온 자부심, 그리고 은퇴 후에 무엇을 할지는 모르나 어떤 부문에서든 나라와 외교를 위해 돕겠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난다.
그간 폭주한 업무 속에서 퇴임 이후를 구상하기는 어려웠다. 은퇴 후 수개월은 다소 방황의 시간이었다. 갑자기 길어진 하루를 보내기 위해 여기저기 도서관도 찾아다녔다.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데 할 일이 없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60세 이후 삶의 소명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해 2월 출석하고 있는 사랑의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담임목사님은 장로 직분에 피택됐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순간 돌아가신 어머님 모습이 떠올랐다. 원주 중부장로교회의 종신권사이셨던 어머니는 기도의 여인이었다. 일찍 돌아가실 것을 아셨는지 자녀들을 위해 하루 세 번 정해 놓고 기도하셨다. 어머님은 내가 사역자의 길을 가기를 원하셨으나 나는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어머님이 천국에서도 아들의 장로 피택에 기뻐하실 모습을 연상하며 그 자리에서 직분을 받겠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하나님은 다시 두 가지 일을 허락하셨다. 하나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직이었으며 또 하나는 유엔글로벌콤팩트를 창설하고 그 협회를 이끄는 것이다. 유엔글로벌콤팩트는 유엔과 기업이 협력해 기업이 인권, 노동권, 환경 존중 및 부패방지를 잘해 국제개발에도 기여하자는 운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운동의 출범이 늦어지다가 외교통상부와 유엔개발계획(UNDP)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설립에 앞장섰다. 수개월간 회사를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뜻있는 분들과 함께 출범, 지금은 187개 회원사가 참여하는 조직이 됐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아모스 5장 24절의 말씀을 떠올린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돼 기쁘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와 경제개발, 그리고 문화 창달까지 이룬 나라가 되었고 이제 가치를 세련되게 다듬을 수 있다면 세계를 영적으로 주도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2008년 5월에는 중국 옌볜과기대를 방문했다. 투먼에서 두만강 물을 만지며 북한의 고통받는 동포들을 위해 기도하고, 백두산 천지에 올라 북한의 변화와 한민족이 복음으로 하나 되는 일을 위해 쓰임 받기를 기도드렸다. 이북 출신인 나는 북한의 교회 재건과 특히 어머님이 다니시던 원산교회의 재건을 기도하고 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주로 근무했던 경력으로 유럽 재복음화를 위해서도 기도 중이다. 아프리카 니제르를 단기선교차 방문했고 현지 선교사를 도와 복음전도의 시간도 가졌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의 어떠한 지식보다 깊고 높기에,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더 아는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주철기 전 대사=1946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서울대, 벨지움자유브루셀대, 프랑스국제행정대학원 졸업,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주제네바 차석 대사, 주모로코·모리타니 대사, 주프랑스 대사 겸 유네스코 대사 역임, 현재 유엔글로벌콤팩트 부회장 겸 사무총장, 웨일즈복음주의신학교 이사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