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오경식] 국정원 사태, 냉철한 대응을
입력 2011-02-28 17:51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서로 경쟁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한쪽에서는 국가위신 손상과 함께 정부가 역점을 둔 고등 훈련기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을 염려한다. 다른 쪽에서는 국가정보기관의 범죄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정치적 쟁점으로 몰아가고 있다.
과거 외국에서 있었던 비슷한 사례는 어떻게 처리됐는지 살펴보자. 지난해 카다피 후계 세습 정보를 파악하다 추방된 사건, 2008년과 2009년 러시아에서 불법 정보수집으로 국정원 직원 4명이 추방된 사건, 스위스에서 김정일 가족 정보수집 중 추방된 사건 등은 그 나라 입장에서는 불법 및 간첩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국제정보쟁탈전에서 국익을 위한 정보수집 활동의 일환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신상을 공개한 적도 없고, 외국법을 위반한 데 대해 여당이나 야당에서 이슈로 다룬 사례도 거의 없다. 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빈번히 발생되고 있다. 1995년 미국·일본 간 자동차 협상 때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일본 측 기밀회의를 도청했다가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정상회담까지 취소됐다. 이 협상에서 일본 협상단은 시종 미국에 끌려 다녔는데, CIA가 매일 도청 내용을 분석해 당시 캔터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전달한 게 원인이었다.
2007년 말 구티에레즈 미 상무장관이 무역협상을 하러 중국에 갔다가 노트북을 복사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미 연방수사국(FBI)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 당시 우리 협상단은 협상 장소로 미 무역대표부 본부에서 1시간30여분 거리에 있는 메릴랜드 주의 한적한 호텔을 택했다. 미·일 자동차 협상 때처럼 도청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행 국정원법은 정보수집, 작성, 배포 활동의 범위를 국외 정보와 국내 보안정보로 규정하고 있는데, 국외정보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이번 사건은 국외정보로 볼 수밖에 없어 국정원법에서 정한 법리를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각국의 정보기관은 국가 간 무한경쟁시대에 대비해 전통적 안보활동에서 경제, 환경 등 신 국가안보 분야에까지 정보활동을 확대하는 추세다. 일본 내각조사실과 이탈리아 민주보안집행위(CESIS) 등 선진국 정보기관은 국내 중요정책에 대해서까지 정보 수집·분석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보기관은 국정원법이 뒷받침되지 않아 활동영역에 제한이 있어 경쟁과 협상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정보기관의 활동은 투명성을 높여야 하지만 국외정보와 같이 국익을 위한 활동은 은밀해야 할 필요도 있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성적인 대응보다 국제정세를 감안한 냉철한 대응이 필요하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교수 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