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10) 전남 나주 남영이발관 김기섭-강고순 부부

입력 2011-02-28 18:02


수요 이발봉사 30년 “소외이웃 얼굴 펴지듯 주름진 삶도 펴졌으면…”

전남 나주 영산포 지역 이발관 종사자들은 매주 수요일 문을 닫고 쉰다. 하지만 나주시 이창동에서 남영이발관을 운영하는 김기섭(67)·강고순(66)씨 부부는 오히려 이날이 더 바쁘다. 이발관 쉬는 날을 택해 노인요양원이나 홀몸노인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 이발 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월 넷째주 수요일인 지난 23일에도 김씨 부부는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이발도구를 챙기는 등 외출 준비를 마쳤다. 택시를 타고 나주시 삼영동 노인전문요양원에 오전 7시쯤 도착했다. 먼저 치매나 중증장애노인들의 아침 식사 수발을 들었다.

식사를 마치자 노인들과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묻거나 몸이 불편한 곳은 없는 지 살피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부부가 함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외로움을 달래주려는 김씨 부부의 배려에 노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환한 미소로 응답했다.

오전 9시가 되자 하얀 가운으로 갈아입은 김씨 부부가 가위를 들고 백발이 된 노인들의 머리카락을 다듬기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부축해 의자에 앉힌 뒤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한 할아버지가 “예쁘게 잘라 달라”고 말하자 김씨가 “할머니들 방으로 선보러 가려고요?”라며 맞장구쳤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부부는 노인 20여명의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 한 번만 쉬는 등 정성을 다했다.

송기수(74) 할아버지는 “이발하고 나니 깨끗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매달 김씨 부부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2006년 3월 이 노인요양원이 개원한 이후 매달 찾아가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평소에는 큰딸 미정(41), 둘째 딸 미라(38), 셋째 딸 미애(35), 아들 태호(33)씨도 개별적으로 동참하지만 이날은 직장 일 등으로 바빠 모두 참여하지 못했다.

이 노인요양원 김회동(56) 원장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월 넷째 주 수요일이면 김씨 가족이 찾아와 이발봉사 등을 한다”며 “노인들이나 직원들 모두 이제 가족처럼 생각한다”고 고마워했다.

김씨 부부는 이발을 끝낸 뒤 오전 11시쯤 도구를 챙겨 4㎞쯤 떨어진 나주시 진포동으로 향했다. 1급 지체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김모(77)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깎아주기 위해서다. 이어 다시 나주시 송월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K씨(55)를 찾아가 안부를 살폈다. 특히 사가지고 온 이발 도구 한 세트를 K씨의 부인에게 건네며 하루 종일 누워있는 남편의 머리를 자주 손질해주도록 당부했다. 차가 없는 김씨 부부는 이날 이곳저곳을 버스나 택시를 타고 돌아다녔다.

중 2년 때인 15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이발 기술을 배운 김씨. 그가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한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1970년대 보험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돼 셋방살이를 전전하는 처지가 됐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 자식들 가운데 두 명은 고교만 마친 뒤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부인 강씨는 그 충격으로 청각장애가 온 데다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는 오히려 “내 집을 다시 마련하는 날이 오면 그때부터 남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고생 끝에 1980년 대지 82㎡ 규모의 조그만 집을 마련했다. 이후 김씨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 이발관이 쉬는 날이면 가족 모르게 혼자 자전거를 3∼4㎞씩 타고 다니며 무료 이발봉사를 했다. 이 사실을 부인 강씨가 알고 동참하자 성인이 된 4명의 자녀들도 흔쾌히 뜻을 같이했다.

김씨 가족은 나주시 산포면 국립나주정신병원과 양로원인 ‘수덕의 집’, 장애인수용시설인 ‘성산원’을 비롯해 노환으로 문 밖 출입을 못하는 홀몸노인 등을 찾아다니며 이발봉사를 했다. 어려운 이웃을 찾아갈 때는 반찬거리나 간식 등을 준비해 전달하고 빨래도 해줬다.

봉사 영역은 나주지역에 그치지 않고 광주광역시 내 종합병원의 환자들에게로 확대됐다. 병원에서 김씨 부부가 하얀 가운을 입고 가위질을 하며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띄우면 자녀들은 환자들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말동무가 돼 준다.

김씨는 “평상시에는 서로 바빠 대화할 틈을 내기 힘들었는데 매주 수요일이면 온 가족이 함께 봉사를 다니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가정도 화목해졌다”며 봉사활동 예찬론을 폈다. 부인 강씨도 봉사에 나서면서 성격이 한결 밝아졌다.

물론 주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일부 이웃 주민은 “노인들에게 이발 봉사할 시간이 있으면 잠이나 자라”거나 “세상물정 모르고 멍청하게 살고 있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30여년 전 자신과 한 약속을 지켜왔고 지금은 동네 주민들도 김씨 가족을 ‘가위손 가족’이라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이 결코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3000만원이 채 안 되는 집 한 채가 전부지만 그에게 봉사는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됐다. 남들보다 많은 재주를 가져서가 아니라 그저 남들과 나누는 것이 좋기 때문에 봉사에 나선다.

김씨가 운영하는 이발관에 들어서면 출입문 옆 벽면에 ‘봉사는 몸과 마음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글귀가 눈에 띈다. 김씨가 자신의 봉사에 대한 철학을 담아 직접 쓴 것이다. “봉사는 몸을 희생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해 표현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눔으로써 마음이 뿌듯하고 편안해지며 오히려 의미 있는 것들을 되돌려 받는 소중한 일이 봉사라는 것이다.

이 같은 봉사활동이 알려지면서 상복도 터졌다. 그는 나주시장 표창 5차례와 전남도지사 표창 1차례, 장한 장애인상, 전국자원봉사대축제 동상 등 모두 12차례 각종 상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제16회 나주시민의 상을 받기도 했다. 나주시는 30여년 동안 650여 차례나 그늘진 곳을 찾아 무료 이발봉사를 한 김씨의 봉사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또 2005년 발행된 ‘나눔 동화’라는 책에 ‘가위손 가족의 어떤 소풍’이라는 제목으로 김씨 가족의 봉사활동이 소개되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엔 청와대가 주최한 전국자원봉사가족 초청 오찬에 초대받는 영광도 누렸다.

지방의 농촌도시인 나주는 전국 시 단위 지역 중 유일하게 시 승격 전보다 인구가 줄어든 곳이다. 이 때문에 농촌 곳곳에서 혼자 고향을 지키는 고령의 홀몸노인들이 많아 노인을 위한 김씨 가족의 봉사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봉사는 사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쉽게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박한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김씨 부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면서 가위를 들고 이발할 때 손이 아프기도 해 예전처럼 많은 봉사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씨 부부는 지난해부터 봉사일수를 다소 줄였지만 멈추지는 않고 있다.

쉬는 날이면 이발 도구를 들고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김씨 부부는 “받는 것에 익숙한 세상에서 오히려 주는 것이 기쁨이 더 크다”며 웃음을 가득 지었다. 그들의 바람은 더욱 많은 사람이 봉사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많습니다. 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는 타인을 위한 봉사다. 그런 의미에서 김씨 부부는 이 시대의 아름다운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나주=글·사진 이상일 기자 silee06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