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리비아] “트리폴리 밤은 전쟁터… 정부군에 검문 10번 당했다”
입력 2011-02-27 21:39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특별기편으로 귀국한 교민들은 “탈출에 성공했다”는 안도감 속에 생지옥과도 같았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 KE 9928편은 지난 26일 오전 5시20분(한국시간) 트리폴리 공항을 출발해 오후 8시35분쯤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 비행기에는 우리 현지 건설 근로자와 교민 235명, 외국인 3명이 탑승했다. ‘축 리비아 탈출’ ‘무사귀환 이모’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공항에 마중 나와 있던 가족과 친지들은 교민들이 무사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포옹하며 기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건설현장에서 근무했던 신한건설 최국진(61)씨는 “트리폴리 공항으로 빠져나오는 데 정부군이 모두 10번의 검문을 했다”면서 “공포 분위기 속에 휴대전화와 카메라 칩을 모두 뺏겼지만 무사히 빠져나와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일행 10명 중 1∼2명에게는 아래 속옷까지 벗으라 했고 우리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다 따랐다”며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권용우(47)씨는 “트리폴리의 밤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면서 “길거리에 시신이 널려 있지는 않지만 카다피 궁 앞 건설 현장 주변에서 시신 6구가 뒹구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트리폴리에서 20년 전부터 살았다는 김승훈(45)씨는 “쇠 파이프를 든 현지인들에게 컴퓨터 등을 파는 가게를 약탈당했다”고 전했다.
아내 최선희(61)씨와 함께 귀국한 대한통운 정장건(63) 부사장은 “트리폴리 시내 전체가 50m 간격으로 탱크와 기관총들로 무장돼 있어 반정부군이 진격하는 날엔 정부군과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리비아 한국 대사관이 정확한 비행시간을 알려주지 않아 공항에서 머물다 리비아 안전요원들로부터 죄수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교민도 있었다.
육로를 통한 리비아 철수도 이어지고 있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 인근에서 송전선을 건설하던 현대건설 한국인 직원 12명은 지난 25일 제3국 근로자들과 함께 미니버스 9대를 빌려 이집트 서북단 엘 살룸 국경통과소 쪽으로 탈출했다. 벵가지에서 동쪽으로 200㎞ 떨어진 굽바시에서 공공주택 공사를 하던 현대엠코 한국인 직원 75명을 포함한 1000여명도 현지 부족의 도움을 받아 버스 2대와 승합차 1대, 트레일러 9대를 동원해 리비아를 빠져 나왔다.
현대건설 이국진(41) 차장은 “벵가지에 있는 대우발전소도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카다피가 발전소를 폭격하거나 군함을 파견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송전선 건설을 하던 현대건설 직원들은 지난 20일 무장한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20㎞ 떨어진 대우발전소로 피신했다. 이 차장은 “무장한 폭도들이 차량 20여대를 탈취하고 사무실도 불태웠다”면서 “발전소 쪽이 안전할 것이라고 해서 일단 그쪽으로 피신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인천공항=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