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봄이 오는 장터
입력 2011-02-27 18:18
결코 물러날 것 같지 않던 추위가 슬그머니 힘을 잃었다. 오늘은 봄기운을 만끽하러 5일장이 열리는 유성장터를 찾았다. 도시 한복판에 아직도 시골스러움이 묻어나는 장(場)이 선다는 것이 참 좋다.
봄날의 장터는 사고팔고 또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들로 활기차다. 봄을 알리는 냉이, 쑥, 그리고 달래가 바구니에 수북이 담겨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그들과의 만남이 반갑다. 굳이 작은 보자기에 펼쳐놓은 할머니에게 달래를 산다. 오늘은 달래를 무쳐 식탁에 봄을 담아볼 생각이다. 미나리, 상추, 봄동과 배추의 연한 초록이 싱그럽다. 아저씨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싸게 파는 곳”이니 아무 소리 말고 사라고 외친다.
장 담글 철인지 잘 띄워진 메주들이 여기저기 나와 있다. 국산 콩으로 만들었다지만, 구별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쉽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한 아주머니가 메주를 살피더니 거침없이 세 덩이를 산다. 아마도 아주머니는 좋은 제품을 고를 능력을 가지고 계신가보다. 두툼하게 빚은 손두부 앞에도, 즉석에서 튀기는 어묵 앞에도 사람들이 줄을 섰다. 엄마 손에는 손두부가, 어린 딸 손에는 소시지 끼운 어묵 바가 들려 있어 두 사람이 공평하다.
한약 재료 파는 곳이 많은 것을 보니 봄철은 몸보신 하는 때인가보다. 보기에는 비슷한 나무토막이고 비슷한 풀인데, 그 이름도 효능도 다양하다. 당귀, 작약, 지황, 엄나무가 새롭고, 옆 상자에 들어있는 엉겅퀴, 더덕, 도라지의 구별도 쉽지 않다. 치자가 그렇게 예쁜 열매인지, 홍화가 글자 그대로 붉은 꽃인지 처음 알았다. 아저씨가 간에 좋다는 헛개 달인 물을 따라 준다. 감초가 들어 있어 그런지 꽤 먹을 만하다. 징그러운 지네도, 벗겨놓은 나무껍질도 어디엔가 효능이 있다니 몸에 유익한 약재가 산하에 가득하다. 어떤 동식물이 우리 몸에 어떻게 유익한지를 알아낸 옛 어른들의 실험정신과 지혜가 놀랍고 고맙다.
30년 전통의 녹두빈대떡, 해물파전, 동동주를 파는 곳도 있고, 장터국수와 보리 비빔밥을 파는 곳도 있다. 이들의 착한 가격에 배고픈 손님들이 모여든다. 봄채소를 듬뿍 넣은 보리 비빔밥이 입안에 거칠고 싱그럽다. 식사를 끝낼 즈음, 어디선가 “펑” 하는 소리가 난다.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니 방금 튀겨진 강냉이가 자루에서 쏟아져 나온다. 장터에는 어느덧 고소함이 퍼져나간다.
오늘 장터에는 유난히 꽃집이 붐빈다. 서둘러 핀 보라색, 분홍색, 또 노란색 꽃들이 화사하다. 선인장도 작은 꽃이 되어 앙증맞게 피어 있다. 사고 싶었던 모종은 아직 나오지 않아 봄 향기 짙은 프리지아를 세 단 산다. 프리지아로 집에 봄 향기를 불어넣어야겠다. 꽃 파는 아줌마의 “행복하세요”라는 인사가 마음에 든다. 분홍 털모자를 쓴 아가씨의 자전거 바구니에도, 흰머리 할머니의 장바구니에도 몽우리진 노란 프리지아가 담겨 있다. 장바구니에 봄을 담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행복하다.
김재희 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