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재스민과 시민혁명
입력 2011-02-27 17:30
재스민(Jasmine)의 원래 이름은 ‘예스민(yasmin)’이다. 페르시아어로 신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선사하는 향을 뿜어내는 이 식물은 예로부터 최고의 중동산 향료로 각광받아왔다. 그런 재스민이 ‘혁명’이란 단어를 만나자, 그 어떤 것보다 위험스런 것으로 둔갑했다.
수백 년 동안 북아프리카에서 아랍반도까지의 국가들은 대부분 봉건 왕정 아니면 군사독재 체제였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터부시하는 이슬람의 종교적 전통은 이들의 전횡을 뒷받침하는 이념적 도구였다.
그 뒤편에서 권력자들은 석유를 팔아 벌어들인 막대한 부로 온갖 특권을 누려왔다. 이들의 통치는 그지없이 편했다. 지나친 감시도구를 고안해내지 않아도 권력에 편승한 보수파 이슬람교가 시민들을 대신 감시해 줬다. 고의적으로 이슬람을 통치수단으로 사용하기만 하면 됐다.
이 사이 서민들은 가난에 치를 떨어야 했다. 국가의 부가 일개 왕족과 독재자의 가신들만 살찌워도 탄압이 무서워 말도 꺼내지 못했다. 중동지역 대다수 서민들은 아직도 하루 먹을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선 곡물 수입가격이 오르자 필수 식료품값이 오르고 먹을 빵 값이 폭등하자 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복잡한 지정학적 요인이 개입된 리비아에서도 민중 봉기의 동력은 먹고 살기 힘든 서민들이다. 예멘,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시위가 계속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중동의 국가들이 이처럼 곪아터지도록 방치된 이유는 뭘까. 1차적인 책임이야 바로 그곳 권력자들에게 있겠지만, 자본주의에 길이 든 서구도 한몫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서방은 항상 중동 권력자들 편이었다. 친서방 국가에선 적극 독재를 도왔고, 반서방 국가들은 그냥 방치했다. ‘지구의 동력원 공급처’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세계경제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어느새 이 논리는 우리 내면에도 깊숙이 자리 잡았다. 중동의 민주화 시위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곳 사람들의 힘든 삶을 걱정하기보다 ‘빨리 좀 가라앉아 기름값 걱정 좀 안 했으면’하는 게 우리들 속내다.
하지만 중동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삶을 누려야 할 창조주의 자식들이다. 지금 그들은 바로 이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
하루 빨리 이들이 ‘신의 선물’ 재스민 차 향기를 맡으며 온전한 삶을 누리길 바란다. 그런 터전을 닦을 바람직한 국가와 제도를 갖길 기대한다.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