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아닌 온몸으로 그대를 듣고자… ‘코끼리 주파수’
입력 2011-02-25 17:51
코끼리 주파수/김태형/창비
김태형(41·사진) 시인. 축구에 비유하자면 그는 드리블에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선수에 해당한다. 1992년 스물세 살의 나이에 등단한 만큼 지구력과 근력이 남다른 점도 있겠지만 ‘본질’(골)에 대한 집중력과 경계를 무너뜨리고 주변을 모호하게 하는 페인트 모션 등 개인기 또한 출중하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코끼리 주파수’(창비)는 시작부터 “필경에는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가 있다/무거운 안개구름이 밀려들어/귀밑머리에 젖어도/한번은 꼭 해야만 되는 얘기가 있다”(‘당신 생각’)라고 말문을 연다. 삶의 기원에 대해, 인간이 마주한 이 세계에 대해,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할 현실의 기억에 대해 시인은 전면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시편마다 구구절절하지만 그 구구절절함의 스펙트럼은 꽤나 넓어 한 권의 시집에 담아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차가운 마룻바닥의 어둠 속에서/어떤 괴물이 태어날지 모른다/죄수 안에 또다른 죄수가/이제 막 탄생하고 있을지 모른다/내가 외로운 것은 혼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내가 지금 이토록 괴로운 이유는/당신을 끝내 그리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디아스포라’ 부분)
그에게 혼자가 된다는 것은 외로운 게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오롯이 그리워할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자신을 외롭게 한다고 느낀다. 그리움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한 당신이기에….
“옛 그림에서나 잠깐 보았던 무릉을/한 절벽 앞에서 마주친다/그러나 그 무엇이라도 그리워하지 못했으니/이 앞에서 나는 그저/한 걸음조차 뛰어내릴 수 없는/막다른 길일 뿐/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하자/가파른 절벽처럼 여기서/떨어져 사라져도 좋았을 아찔한 순간들이/주차장 뒤로 사라지고 없다”(‘절벽은 다른 곳에 있다’ 부분)
예전의 당신, 사랑했던 당신은 지금 여기에 없다. 당신을 잃지 않으려면 절벽에서 뛰어내릴 만큼 용기를 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고 결국 당신은 사라지고 없다. 그립고 그리운 당신의 말이라도 다시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들을 수 없는 말들은 먼저 몸으로 받아야 한다는 걸/몸으로 울리는 누군가의 떨림을/내 몸으로서만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코끼리 주파수’ 부분)
시적 화자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코끼리에게도 소리를 전달한다는 코끼리 주파수처럼 차라리 귀가 아니라 온 몸으로 당신의 목소리를 듣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 안에서 울려 퍼지는 내면의 목소리인 동시에 그 소리는 ‘당신’에게 닿기 위한 그만의 주파수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뿐인 심장이 두 사람의 피를 흐르게 하기 위해서/숨 가쁘게 숨 가쁘게 뛰기 시작하던 그 순간처럼(‘당신이라는 이유’)에서 드러나듯 다시 한번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그리움의 주파수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