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동수] 이원성(二元性)을 극복하라

입력 2011-02-25 18:51

얼마전 무신론자인 지인에게 교회 출석을 권유했다. 여러 일로 삶이 무척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교회 다니는 형 때문에 안 나가고 싶다”는 것. 기독교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지만 장로인 그의 형이 너무 인색하고 이기적으로 살아 교회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뼈아픈 이야기다. 사실 이 땅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과 일, 교회생활과 세상살이에서 심각한 불일치를 드러낸다. 교회 내에선 인정받는 성도로 살지만 세상에선 불법과 비리를 예사로 저지르고 나눔과 배려에서도 불신자보다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모습들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증대시키고 있다. 장공 김재준 선생은 생전에 “신앙생활이 현실의 삶에서 유리되거나 무관심하게 될 때 생명력이 없다”고 말했다. 또 “생활화한 신앙이란 생활의 전 부분이며 종교가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은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가장 공교한 기만”이라고 지적했다.

장공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무겁게 다가온다. 작금 운위되는 기독교의 위기는 크리스천들이 신앙의 생활화를 놓친 데서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생활영역을 너무 무시해 왔다. 일상은 은연중 속(俗)과 동일시되고 성(聖)과 반대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시간만 거룩하고, 여타 일상은 생존을 위한 시간일 뿐이란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했다.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의 이원성이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약화시킨 주범이라고 볼 수 있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재철 목사는 저서 ‘사도행전 속으로’에서 “크리스천이란 교회의 주어이신 주님의 동사가 되기 위해 예배당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예배당 밖 일상에서도 자신의 손과 발을,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드린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신앙은 전인격적인 것이다. 신앙은 크리스천의 생각과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돼야 한다. 기독교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무엇보다 크리스천들이 삶의 현장에서 이원성을 극복해야 한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자녀답게 처신하고, 생활과 복음을 통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 전도와 부흥은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다.

박동수 선임기자 dspark@kmib.co.kr